▲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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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좌파
민주노총의 교육선전실장과 대변인을 역임했던 남정수 mg손해보험 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APEC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부끄럽다고 했다. "미국에서 700만이 시위에 나서고 있는데, 그 머리에 왕관을 얹어주는 선물이라니. 왕관이 아니라 관을 줘도 시원찮을 판에. 주권과 자존, 민중의 삶이 전제되지 않는 국익은 없다. 관세협상에서 트럼프는 상수고, 이재명이 변수였다. 변수가 상수로 확인된 지금 우 국민연금기금 리의 입장과 태도는 더 날카로워야 한다" 그러니까 남정수씨는 한국정부가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하는 미국의 700만 시민들과 연대해서 트럼프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해야 했고, 그래서 한국의 주권과 자존, 민중의 삶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굴욕적으로 훈장과 왕관까지 주면서 대체 무엇을 얻었느냐, 이는 미국에 2금융권 대출이자 종속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미국의 좌파 남정수씨가 연대하고 싶다는 미국의 반트럼프 700만 시위대 99%가 좋아할 미국의 시사풍자 <데일리쇼>(케이블채널 '코미디 센트럴'에서 방영, 한국의 '매불쇼'와 비슷한 성격)에서는 한국 정부를 향해 "우리 미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얼마나 취급수수료 애썼는지 아느냐"라며 "제발 그냥 다른 나라들처럼 돈다발이나 한 자루 줘라"라고 조롱한다. 트럼프의 왕 놀음에 발맞추지 말고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처럼 미국에게 돈이나 주라는 것이다. 공짜로 돈 받는 건 뭐 나쁘지는 않다, 괜찮다는 뜻이 된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관세를 받아서 미국인들 호주머니에 몇천 달러라도 챙겨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고정금리갈아타기 한국의 우파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고, 국민의힘 친윤세력이 어떻게든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보려고 했던 한덕수 전 총리는 지난 4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미국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요구를 다 들어줄 것이라는 뜻이었다. 트럼프는 3500억달러를 선불로 현찰로 내라고 했으니 한덕수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한국은 3500억달러를, 어쩌면 그 이상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을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미국의 우파
▲ 모스 탄, 전한길, 민경욱이 연사로 참가하는 워싱턴 긴급 구국 강연회 소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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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협상이 타결되고 미국과 중국도 관세전쟁에서 잠정휴전을 하며 시간 벌기에 들어갔지만,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혐중 발언을 쏟아내는 한미 인사들의 연대는 여전히 강고하다. 위 포스터에 따르면 10월 31일 민경욱, 전한길, 모스 탄 등이 워싱턴에서 구국 강연회를 열었다. 그들은 한국은 미증유의 위기상황에 빠져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즉각 행동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모스탄 전 미 국무부 국제형사사법 대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국제 공조를 역설"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달러를 선불로 약탈하려 했다는 뜻인가? 전 세계를 상대로 속칭 '삥'을 뜯고 있는 듯한 트럼프의 행태에 대해 모스 탄, 민경욱, 전한길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현실 현대 자본주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자산 격차가 심하다. 상위 10%가 축적한 부가 하위 50%의 부보다 더 크다. 미국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5조 달러, 7000조 원이 넘지만 한국 코스피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함 모든 기업을 다 합해야 3500조 원 정도 된다. 코스피가 4000포인트를 넘어서서 그 수준이다. 엔비디아라는 한 회사의 시가총액이 한국을 대표하는 상장사들 2700여 개를 모두 모아놓은 것보다 2배 더 크다. 전 세계 GDP는 110조 달러 정도 되는데 그 중 미국 GDP가 30조달러, 중국 GDP는 20조 달러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50%에 육박한다. 한국의 GDP는 1조 8천억 달러, 세계 GDP의 2%에도 못 미친다. 미국 시장 하나만 놓고 봐도 저렇게 크다. 한 나라의 GDP가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데 그중 내수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또 70%다. 영화 <고질라>의 선전 문구처럼 '규모가 갑'이다(Size does matter). 개인도 양극화되어 있고, 기업들도 양극화되어 있고, 국가들도 양극화되어 있다. 미국 시장에 물건을 팔려면 유럽은 60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고, 일본은 5500억 달러, 한국은 3500억 달러를 내야한다고 트럼프는 말해왔다. 자유무역을 주창하던 미국이 돌변해서 한국을 포함한 수출흑자국들이 낸 이익은 모두 불공정무역을 통한 것인양 윽박지른다. 미국이 갈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일본,한국 등 대미 수출흑자국들이 수십년동안 불공정무역을 통해 흑자를 내왔으니 그걸 돌려받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다. 수출입이 GDP보다 더 큰 나라다. 한국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들은 1위부터 10위까지가 다 수출기업들이다. 안 팔면 그만이다, 우리끼리 한국 시장에서만 팔아도 충분히 매출이 나온다, 직원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다, 돈 벌고 이윤 내서 정부에 세금도 낼 수 있다고 큰 소리 칠 수 있는 기업들은 시가총액 1위부터 10위까지에는 없다(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자우, 현대차,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기아). 한국은 세계를 시장으로 물건을 팔아야 먹고 사는 구조다.
선택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접견에 앞서 국내 기업 대표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젠슨 황,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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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트럼프의 독재적 행태가 꼴보기 싫어서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면, 반미를 했다면, 그래서 미국이 당초 원안대로 25%의 관세를 한국의 자동차 등에 부과했다면, 또는 그보다 더한 보복관세를 때려버렸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단순히 하루이틀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실물경제에도 직접적 타격을 준다.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았다는 명분이 생겼으니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로의 공장 이전이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공장을 이전했을 것이다. 지금도 이전하고 있지만 그 속도와 규모가 훨씬 더 빠르고 커졌을 것이다. 국내 고용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국가가 보호해 주지 않으니 우리는 떠날 수밖에 없다고 소리치면 된다. 기업의 1차적 목적은 돈을 벌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고용이 늘어나고 정부의 세수가 늘어나는 건 이에 따른 부수적 현상일 뿐이다. 지난달 27일 아마존은 정규직 직원 3만 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월에 1000명, 5월에 6000명, 7월에는 전체 인력의 4%인 9000명을 감원했다. 인공지능 AI로 생산성이 높아지자 엄청나게 돈을 잘 벌고 있는 기업들도 대규모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미국이 한국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의 대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관세를 피해 미국 현지 생산을 더 가속화한다면 한국 대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막대한 투자 비용 때문에 애를 먹겠지만 장기적으로는 2가지의 이점을 향유할 수 있다. 1. 앞으로 세울 공장에는 AI와 로봇으로 생산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2. 한국에 비해 해고가 비교적 자유롭다. 대신 한국 제조업은 공동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한국의 GDP는 마이너스 역성장하고, 내수시장은 붕괴되고 원화 가치는 더 폭락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단 2가지의 선택지만 있었던 것이다. 1. 덜 뺏기느냐2. 더 뺏기느냐 한국은 덜 뺏겼다. 게다가 다행히도(?) 우리만 뺏긴 게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 상대해야 할 다른 경쟁국들도 뺏겼다. 다른 경쟁국들에게도 관세가 부과된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라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생존이다. 국내의 일자리다. 관세가 없을 때도 거대한 미국 시장, 중국 시장으로 이전하는 한국 기업들은 늘어났다. 관세가 높을수록 그 이전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에 남아 있어도 기술, 비용, 제품의 경쟁력이 탁월해서 관세를 압도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새로운 보호무역질서에서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 공장이 남아 있어도 기업이 생존,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금을 덜 뺏긴 건 잘한 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과제는 공장을 덜 뺏기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다. 공장을 뺏기면 일자리를 잃고, 일자리를 잃으면 한국의 공장지대들이 미국처럼 '러스트벨트화'하고,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들이 많아질수록 트럼프 같은 괴물이 탄생할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 미국은 달러패권, 최첨단의 금융시장,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시장이라도 있지만 한국은 제조업을 잃으면 끝이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라. 노동자들도 우리 기업, 자기 직장 중한 줄 알아야 한다.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그래도 국가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말대로 외계인이 침공하면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굴종하는 게 아니라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의) 친미도 해야 하고 친중도 해야 하고 친일도 해야 하고, 친기업적이어야 하고, 친노동자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한다.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는 것이 진화다. 자연에서는 매력적인 것이 살아남는다. 능력 있는 것이 살아남는다. 노력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함께 협력해야 살아남는다. 제발 서로가 서로를 아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