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을 찾아 가족 모두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갔지만 끝내 영주권을 얻지 못하고 전남 구례로 귀촌한 임세웅 문화해설사. 지난날 겪었던 좌절은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고, 이제 그는 문화해설사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인생 2막을 꽃피우고 있다. 지리산 야생화의 향기처럼 순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구례를 알고 싶어 시작한 문화해설사 아침 첫 기차를 타고 전라선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역사 밖 주차장에서 임세웅 씨(58)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역에서 문화해설 부동산담보대출 사이자 1인 여행사 ‘구래애올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 해설사가 건넨 명함에서부터 남다름이 전해졌다. 지리산 봉우리인 노고단과 대표 야생화 노랑원추리가 그려져 있는 점도 특이할뿐더러 명함에서 실제 꽃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야생화에서 추출한 향료를 입힌 건데, 지갑에 넣어두면 향이 1년은 갑니다. 구례 지역 베트남채무불이행 화가에게 의뢰해서 만들었어요. 저기 앞에 보이는 저 산이 바로 명함에 그려진 노고단이고요.”
임세웅 문화해설사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시작된 구례 1일 관광. 노고단에선 통일신라시대 이래 매해 곡우절이면 국가 제 2금융권대출한도 례인 남악제를 지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두 손으로 흙을 감싼 듯한 모습을 한 지형과 지명에 담긴 의미까지 구례에 대한 이야기는 쉼 없이 이어졌다. “구례의 옛 이름이 구차례현(仇次禮縣)이에요. ‘원수도 예를 갖추는 곳’이란 뜻이죠. 예부터 구례 사람들이 인정을 잘 베풀기로 유명해 붙은 이름입니다.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운동을 인성저축은행영업시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1960년대에 구례의 1만 2000가구 중 1만 가구가 모금에 참여했을 정도로 구례 사람들은 고장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고 단결도 잘돼죠.” 임 해설사는 구례에 오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라며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는 그에게 각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2006년 아내와 아이들이 처제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농협물류 을 갔다. 3년 뒤 그도 따라갔다가 2011년 귀국해 구례로 귀촌한 뒤 택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 주요 활동 지역이 화엄사 인근이었다. “손님들을 태우고 하루에도 수십 번 화엄사 입구를 오갔어요. 근데 막상 손님이 구례에 관해 물으면 아는 것이 없으니 아무 말도 못했죠. 그러다 2013년에 구례를 제대로 소개하고 싶어 신청한 문화해설사 교육생으로 덜컥 합격하면서 택시와 해설사 일을 병행하게 됐어요.”
진심이 담긴 구례의 진짜 이야기 화엄사에 도착하자 막힘없는 해설이 시작됐다. 가람 배치에 담긴 불교의 중도 사상, 임진왜란 시기 승병을 일으켜 왜적과 맞서 싸운 호국의 역사, 각황전(覺皇殿)과 효대(孝臺)에 담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등 화엄사에 얽힌 풍부하고 생생한 이야기가 임 해설사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만의 안목을 덧입힌 이야기에 절로 호응이 일고 몰입됐다.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이 이야기들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공부한 것일까.
임세웅 해설사가 구례 관광 해설을 할 때 가장 먼저 찾는다는 화엄사 전경.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으로 ‘구례’부터 검색해요. 전문가들이 쓴 최신 칼럼과 <난중일기> <태백산맥> <징비록> 등 구례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어 해설에 반영해요. 요즘은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오디오 북으로 듣고 있어요.” 경기 용인에서 자란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IT 업계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구례에 와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임 해설사. 평소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문화 해설만 하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처음엔 팔짱을 끼고 닫힌 마음으로 있던 관광객이 제 해설이 끝날 즈음, 구례에 푹 빠진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택시 일을 정리하고 1인 여행사 운영을 시작하게 된 건 2020년 무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택시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선택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위기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그가 귀촌 이후 꾸준히 써온 블로그 글이 외지인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갔고 이후 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전북·전남 지역 교육연수원생, 전남 지역 학생 등 단체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2025년엔 섬진강을 매개로 체류형 관광지구를 만드는 ‘섬진강 스테이 사업’의 일환으로 2차례 해설을 나가기도 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거나 혜택을 보려고 하지 않고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 넘게 해설사 일을 해오게 됐죠. 조바심 내지 않고 서서히 구례 군민들과 융화된 덕에 귀촌 갈등도 없었고요. 한 달에 5번 정도 투어를 나가는데,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코스를 짜다 보니 틀에 박히지 않고 지루하지 않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요.”
구례에 온 공무원 연수 단체 관광객을 가이드하는 임세웅 해설사의 모습.
그는 구례의 대표 맛집부터 주요 관광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지역 밀착형’ 해설사로 유명하다. 심지어 어느 식당 주인장이 누구의 손맛을 이어받아 요리를 배웠고, 평소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는지, 그 자식들은 무엇을 하는지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라고. 실핏줄같이 세세한 지역 이야기가 담긴 그의 해설은 ‘재미있다’ ‘흥미롭다’ 같은 단편적인 감상을 넘어 구례의 진짜 이야기를 손님들 마음속에 남긴다.
전화위복으로 열린 귀촌 15년 임 해설사가 1년에 200번 이상은 찾는다는 한옥 고택 ‘쌍산재’에 도착했다. 2021년 방영된 tvN 예능프로그램 〈윤스테이〉 촬영지로 유명해진 이곳은 방송을 타기 훨씬 전인 2012년부터 그가 왕래했다. 우연히 숙박 손님을 따라 들어갔다가 3만 2000㎡(약 9700평)에 달하는 한옥의 고즈넉한 풍경에 반해 해설사로서 10년 넘게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임 해설사님이야 워낙 해설에 깊이가 있으니 구례에만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쌍산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내하시는 모습에 저희로선 감사할 따름이에요.” 집주인 해주 오씨 6대손 오경영 씨와 아내 김정희 씨의 말에 임 해설사가 슬며시 웃는다. 정원이 아닌 후원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낸 한옥 이야기, 해주 오씨 가문에서 오래도록 내려온 나눔의 가치 등 쌍산재에 담긴 200년 역사를 읊는 그의 목소리에 어느새 신명이 실린다. 임씨는 구례의 명소를 소개하는 지금의 생활을 캐나다에서 돌아오던 2011년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아내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쉼 없이 했던 식당 일은 녹록지 않았고, 이후 영주권 취득 실패로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을 땐 눈앞이 깜깜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서울도 고향도 아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구례였다.
섬진강 강변길 정자에서 내려다본 일몰 풍경.
“2009년 캐나다로 출국하기 직전 구례를 여행하면서 봤던 섬진강 강변길이 떠오르더라고요. 왠지 구례라면 다시 용기를 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당시 두 아들과 늦둥이 딸, 아내와 함께 구례에서 2년만 살아보잔 생각으로 내려왔는데 그렇게 시작한 구례살이가 올해로 15년 차네요. 이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면서 이젠 삶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임 해설사는 구례에서 하동 포구로 가는 섬진강 변 19번 국도로 기자를 이끌었다. 사성암이 보이는 정자 앞에 차가 멈췄다. 정자 위에 오르자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구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저희 가족을 도와준 은인이 곳곳에 있었어요. 제가 무얼 하든 잘할 거라며 응원해준 선배 귀촌 형님, 저희 부부를 대신해 늦은 밤까지 막둥이를 돌봐준 돌봄교실 선생님, 외지인인 제게 문화해설사 교육 기회를 준 구례군청 직원까지. 저는 구례분들에게 늘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리산 자락의 야생화들은 그늘 한 점 없는 척박한 땅에 뿌리 내려 꿋꿋하게 꽃을 피운다. 그의 명함에서 감돌던 꽃향기처럼 임 해설사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구례의 향이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될 듯하다. 글 이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