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순천의 앞산이며 전망대인 죽도봉(101.8m)으로 향한 걷기 여행의 출발지는 순천역이었다. 순천역에서 역전 오거리를 지나 풍덕교에서 동천 산책로를 찾았다. 풍덕교에서 400m 동천 상류 위치를 경전선 철도 교량이 건너 증명발급신청 고 있었다. 이곳의 경전선 선로는 단선 철길이었다.
경전선 철길과 순천교 사이의 동천 제방 옆 공간에 여순10.·19평화공원이 있다. 여순평화공원 앞의 이수로 건너편은 장대공원이다. 장대공원 사거리의 지하를 전라선 철도가 터널로 들어간다. 죽도봉의 동천 쪽 산기슭을 터널이 뚫고 한참을 지나가서 지상으로 철도가 나온다. 9.1부동산정책 죽도봉 남쪽에 동천, 이수로(도로)와 전라선(철도)이 이웃하는 지역을 장대마을이라 했다. 조선 시대에 군대의 진영과 지휘 돈대인 장대(將臺)가 있었다. 1936년 10월에 전라선 철도가 개통하며 순천역이 들어서고, 철도관사 마을이 생겼다.
장대공원에서 죽도봉으로 올라갔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성령을 봉안한 숭성전의 정문인 경숭문 앞을 지났다. 경사가 제법 되는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흥륜사 가람에 이르렀다.
이곳 흥륜사 절터는 역사적으로 죽도봉의 활터 자리였다고 한다. 쉽고빠른대출 임진왜란 이후 화엄사, 송광사, 선암사의 승군들이 이곳 순천 죽도봉에서 궁술을 연마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승려들이 죽도봉에 머물면서 불교 수행과 무예를 결합한 호국 불교의 전통을 유지했다고 한다. 순천 죽도봉에 사자의 정기가 머문다는 옛 이야기가 이해된다.
▲ 순천 죽도봉 흥륜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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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죽도봉의 원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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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의 왼쪽으로 원시림 같은 숲속의 오솔길을 걸어 올라갔다. 숲 속에는 다양한 수종의 거목이 우거졌고, 아열대성 식물도 쉽게 눈에 띄었다.
걷기 여행은 뜻밖의 장소를 만나고,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 걷기 여행을 출발하면서 진행될 여정에 설레고,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과 풍물이 새롭다. 걷기 여행은 지리, 역사와 문화의 탐구 활동이다. 여정 견문 감상을 충실히 채울 수 있다. '생태수도 순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
숲속의 작은 풀밭에 동상과 비석이 여럿 있었다. 고향 순천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한 재일교포 김계선(1911~1994) 선생. 조선 시대 강필리(1713~1767) 순천 부사의 선정을 기리는 백우비(百牛碑)와 백우탑(百牛塔). 조국을 사랑한 순천의 큰 별 호산 강계중(1914~1983) 선생.
▲ 순천 죽도봉 김계선 동상, 강필리 백우비와 백우탑, 강계중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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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동상과 비석 탑이 세워진 풀밭의 끝 숲속 터널로 누각의 단층이 조금 보였다. 순천부성 남문의 누각이었던 연자루(燕子樓)가 이곳에 옮겨져 복원되었다. 연자루는 'T자(字)' 형태의 누정으로 순천부성 남문의 문루이며 장대였다.
백성들이 연자루 앞을 흐르는 옥천을 다리 연자교(燕子橋) 건너면 바로 연자루 '丨자(字)' 형태 아래의 성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연자루의 '一자(字)' 형태는 성벽 위에 세운 부분이었다. 이 연자루 누정은 삼산(三山), 이수(二水), 소강남(小江南) 순천 문화의 상징이었다. 제비는 봄이면 다시 찾아오는 반가운 희망이었다. 연자루 앞길 건너에 팔마탑(八馬塔)이 서 있다. 말 한 마리가 두 앞발을 들고 하늘로 뛰어오르는 힘찬 모습이다. 고려 시대 승평(순천) 부사 최석의 청렴과 애민 정신을 기리는 순청 정신의 아이콘이다.
연자루 옆 울창한 숲에 우석 김종익(1886~1937)의 동상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민족 의식이 강한 사업가였다. 순천 지역사회에 장학 재단을 설립하여 교육 사업과 인재 양성에 공헌했다.
▲ 순천 죽도봉 연자루, 팔마탑과 김종익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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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루 앞의 죽도봉 관광지 안내판에서 환선정(喚仙亭)을 찾았다. 안내판 지도가 방향이 거꾸로 그려져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환선정을 찾아가려 도로를 따라 300m 내려가면서 안내판 지도의 위치를 가늠하는데,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흥륜사 옆이라고 생각하여, 어렵게 환선정을 찾아갔다.
죽도봉에 구름이 지어 만성명월(滿城明月)이 삼오야(三五夜)라 동천을 건너 환선정을 당도하네
이 순천가(順天歌) 가사대로 환선정은 동천을 앞둔 절경에 있었다. 환선정은 16세기 중엽에 건립되어 무예를 연마하는 강무정(講武亭)이었다. 죽도봉은 전죽(箭竹, 시누대)이 무성하여 화살을 만들던 장소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이 환선정이 기록되었다.
'순천 부사가 환선정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겸하여 활도 쏘았다. 3월 17일 맑았다.'
1910년 한때는 송광사와 선암사의 포교소로 활용되었다. 1962년 대홍수에 유실된 환선정을 죽도봉 중턱 이곳에 복원하였다. 환선정 왼쪽에 오르막 오솔길이 있었다. 50m쯤 올라갔더니 연자루와 팔마탑이 보였다. 아이고, 이렇게 가까운 곳을 빙 둘러 찾아 헤맸다니.
▲ 순천 환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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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죽도봉 강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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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마탑에서 왼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소강남 순천의 전망대인 강남정(江南亭)에 이른다. 강남정은 3층 규모의 커다란 팔각정이었다.
강남정 앞의 음수대(飮水臺)가 눈길을 끌었다. 외계 생물처럼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닷가 갯벌에 사는 짱뚱어 형상이었다. "짱뚱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라는 속담의 주인공이다.
강남정을 빙 둘러 의자들이 놓였다. 짱뚱어, 순천만의 철새 흑두루미와 농게를 디자인하였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 '생태 수도 순천'이라는 자부심이 음수대와 의자의 해학적인 디자인에서 느껴졌다.
▲ 순천 죽도봉 짱뚱어 디자인 음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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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죽도봉 짱뚱어, 흑두루미, 농게 디자인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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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정 3층에 올랐다. 남쪽으로 흘러서 멀리 남해에 이르는 9km 경로의 순천 동천이 보였다. 흐린 날씨에 비가 내려서 시야가 선명하지 않았지만, 순천만 국가정원 부근이 희미하게 가늠 되었다. 남해에 이르는 동천 오른쪽으로 해룡산(76m)이 낮게 구릉처럼 보이고, 왼쪽으로 여수의 주산인 앵무산(鸚鵡山, 395m)이 뚜렷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앵무산 중턱에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 해룡산은 후백제와 고려 초기 이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970)가 사후에 이 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박영규가 고려 태조 왕건에서 귀순한 일이 '하늘의 순리였다'라고 하여 이곳 순천(順天)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박영규는 이 지역 남해안 백성들에게 해룡(海龍)이었을까?
▲ 순천 죽도봉 강남정의 순천만 남해 원경, 멀리 오른쪽에 해룡산이 왼쪽에 앵무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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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깨우는 순천 죽도봉은 도시에서 도시를 벗어난 오솔길 산책로가 좋았다. 울창하며 고즈넉한 숲 속으로 진정한 휴식과 치유의 오솔길이 열렸다. 오솔길과 쉼터에서 만난 주민에게 구비 설화와 구전 역사를 의미 깊게 들을 수 있었다. 순천의 역사와 문화가 모여 있는 죽도봉은 순천의 정신과 기상의 상징이었다.
길을 걸으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가을이 깊어 단풍이 들면, 이곳 죽도봉에서 봉화산(355m)까지 등산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