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꽃과 소녀, 자연 풍경을 사랑한 운창(雲昌) 임직순의 개인전 ‘필촉(筆觸): Gesture’이 서울 종로구 예화랑에서 열린다. 드로잉부터 콘테, 수채화, 유화, 판화 등 작가의 가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 56점을 선보이는 자 신용카드 소득증빙 리다. 그의 화업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의 그림을 창덕궁 담벼락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전시장 두개 층에 걸쳐 소개한다. 임직순(1921-1996)은 활달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 구성, 빛의 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묘사가 탁월한 작가다. 특히 그가 집중한 주제는 꽃과 소녀. 1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그의 제2금융권대학생 시선에 비친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공간의 중앙에 배치된 가장 큰 소녀 그림은 ‘꽃과 소녀(1974)’. 양귀비 색이 연상되는 상의가 볼록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동그란 얼굴의 생김새를 더 강조한다. 이 그림 속 소녀는 그의 제자이자 천경자 화백의 며느리 유인숙으로 알려져 있다.
저축은행무직자신용대출임직순, 소녀, 412x32cm, 종이에 수채(Watercolor on paper), 1984. /예화랑
중앙에 자리 잡은 소녀의 그림 오른편에는 세 명의 소녀 작품이 자리 잡았다. 어스름한 저녁,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것처럼 눈을 아래로 내려 깐 채 고개를 숙인 소녀 양 옆에 펀드슈퍼마켓 는 동일 인물인 듯 닮은 소녀의 옆모습이 나란히 걸렸다. 그 바로 뒤로는 꽃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또 다른 ‘꽃과 소녀(1985)’와 ‘기타를 든 소녀(1984)’가 나와 있다. 전시장 2층 중앙에서도 소녀를 담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금발 머리에 묵직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작품 ‘사념(1973)’이다.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소녀의 모습이 관람객의 발길을 이것좀 오래도록 붙잡는다. 작가는 줄곧 교단에 올랐다. 1946년 인천여자고등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 이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거쳐 1961년 오지호 교수의 후임으로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미술학과장으로 초빙돼 생의 전반을 교직에 몸담았다. ‘임직순 10주기전 화집’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 소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이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을 많이 접하는 만큼 모델로 세우기 쉽고, 마주하는 기회가 많아 이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을 터다. 1973년은 작가의 화업에 굵직한 변화가 생긴 해다. 작가는 이 시기 프랑스 파리 ‘Monnet & Peterie’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위해 1년간 파리에서 체류한다. 당시 브뤼셀에 주재 중이었던 유럽 미쓰비시(三菱) 사장 나카가와 닌이치(中川忍一)의 주선으로 유럽 미술사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약 7개월간 파리에서 체류하며 작품 제작 활동에 몰두하게 된 것.
임직순, 만추, 38.2x34cm, 종이에 연필, 수채, 1986. /예화랑
2층 전시장에서는 이 시기 파리의 풍경을 담은 작가의 스케치와 판화로 제작한 전시 포스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 당당히 유럽에서 활동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느껴지는 자화상, 그 당시 프랑스에서 조각가로 성공을 거두며 활동을 하던 조각가 문신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그린 스케치도 눈길을 끈다. 특히 드로잉에서는 세세한 형태 묘사를 과감히 생략한 간결한 구성과 분방한 필치가 돋보인다. 드로잉에서 느낄 수 있는 과감한 필치는 한국의 산천을 담은 작품에서 그 깊이가 한층 더 깊어진다. 특히 작가가 말년에 그린 ‘설경의 설악산(1992)’은 그의 원숙한 필치가 집약된 작품이다. 힘찬 선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산의 형세와 남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같은 설악산이라 할지라도 유화 완성작과 드로잉이 함께 배치돼 있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임직순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작가인만큼 다채로운 색채의 세계를 이루어냈다. 주문진부터 무등산, 문경새재, 설악산에 이르기까지 국내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그의 색으로 캔버스에 남았다. 1층 전시장에 함께 걸린 ‘문경새재(1978)’와 ‘남해(1979)’ 두 작품을 통해 하늘을 표현한 푸른색과 파도를 그린 파란색을 비교해 보는 것 역시 그의 세계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다.
임직순, 설경의 설악산, 100x72.6cm, Oil on canvas, 1992. /예화랑
작가는 작품 초기에는 색채와 형상의 조화에 몰두하였으나 1973년부터 1년간의 해외 체류 이후 서울에서의 활동을 기점으로 그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대상의 본질에 접근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부터 말년의 작품이 고루 배치돼 있어 작가의 생애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따라가볼 수 있다. 오늘날 구상회화는 추상회화에 비해 미술 시장의 중심에서 살짝 빗겨나가 있는 듯하다. ‘무엇을 그렸냐’보다는 ‘무엇을 연상케 하느냐’를 기준으로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현 미술 시장의 기조 탓이다. 하지만 전시장 한 켠, 생전 작가가 남긴 말은 그가 구상회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지 형체를 색채로 옮기는 단순한 일이어서는 안된다.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일, 사물 속의 숨겨진 진실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그것은 화가의 즐거움이자 모든 사람의 즐거움이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