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베'로 불리는 강경 보수 성향의 일본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64)가 21일 일본의 새 총리자리에 앉으면서 한일관계도 당분간 긴장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다카이치 신임 총리의 '극우 본색'이 외교 정책에 곧바로 반영될 경우 이재명 정부 들어 훈풍이 돌고 있는 양국 관계는 경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막 조성된 한미일 협력 무드를 다카이치 총리가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먼저 깨고 나오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 또한 적지 않다. 과거사 대학생저금리 도발로 얻을 정치적 실익 또한 크지 않다는 점에서 안정기에 들어선 한일관계에 대한 무리한 궤도 수정을 시도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무라야마 담화 무효화" 주장하던 극우 총리 등장 그는 보수 정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한국에 대해 강경한 인사로 꼽혀왔다. 경제안전보장상 시절인 2023년에만 3차례 저 걸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일본 시마네현이 매년 주최하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도 차관급이 아닌 장관급 인사를 보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에 대해선 2010년 인터뷰에서 "총리가 되면 무효화하겠다"고 은행 금리 담합 공표하는 등 수정주의적 역사 인식을 바탕에 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계보를 잇는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26년간 협력해온 중도 성향 공명당 대신 극우 노선의 유신회와 연정을 이룬 점도 한일관계에는 악재가 될 대목이다. 다만, 최근 훈풍을 타기 시작한 한일관계를 뒤집을 과거사 도발에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한미일 3각 협력을 대부업대출 중시해온 미국의 반발을 자초할 처지가 못 된다는 분석에서다.
"안정적 한일관계 세팅 뒤집지 않을 듯"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총무상 재임 시절인 2015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학자금대출 대출거절 하고 있다. 됴쿄=연합뉴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면 미국과의 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유신회와의 연정 덕에 간신히 여당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탓에 자민당 본연의 극우적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이재명 정부 들어 안정적 한일관계가 세팅이 됐는데, 여기서 이를 뒤집는 것은 미국과의 갈등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는 일본과의 과거사 충돌보다 실질적 외교·경제 협력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 순방에 앞서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등 한미일 3각 협력 의지를 분명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으로 커진 외교 불확실성을 최소화기 위한 결단으로 평가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을 의식해 일본과의 화해를 택했듯 다카이치 역시 한미일 3각 협력 흐름에 악영향을 줄 만한 외교를 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미국과의 무역 갈등 등 한일이 동시에 겪고 있는 난제가 많아지고 있는 흐름에서 양국 간 협력 수요는 더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7~19일 가을 예대제(제사)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대신 공물을 봉납했다. 이 역시 차기 총리 선출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 외교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경주 APEC서 이재명-다카이치 첫 대면 견고하지 못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역사 도발'로 지지율을 끌어올릴 가능성도 일단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원덕 교수는 "일본 보수 여론도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외교적 불확실성이 커진 탓에 안정적 외교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과거사 충돌로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26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7~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맞을 예정이다. 이후 31일에서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2박3일 일정으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과의 첫 정상 간 대면은 이때 이뤄질 전망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