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후 2015년 귀국 이듬해 밀양에 작업실 마련 철판으로 마감된 넓은 벽 드로잉·치수 메모 등 빼곡 선반에 놓인 작품도 눈길 안과 밖, 과거와 현재 등 두 세계 ‘조형적 연결’ 집중 건축적 재료에 깊이 더해 다양한 작품으로 예술 실험 “꾸준히 작업 이어가고파”
최수환(46) 조각가는 조각의 언어로 세상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상과 누군가로부터의 이야기, 역사와 뉴스 등 삶에서 건져 올린 서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듬어 입체적 언어로 만든다. 실험적이면서도 그가 사는 세계와 공간이 명징하게 다가온다.
그에게 ‘실험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은 한 단어처럼 맞닿아 있다. 오늘도 그는 비소구 밀양 작업실에서 두 세계의 거리를 재고 잇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곳에서 영감과 영감이 연결되고 그렇게 또 다른 서사, 새로운 창작이 펼쳐진다.
최수환 작가의 영감 대출상환액 이 피어나는 작업 공간. 벽이 철판으로 마감돼 있어 자석으로 드로잉, 치수 메모 등을 붙였다 뗄 수 있다.
최수환 작가의 영감이 피어나는 작업 공간. 벽이 철판으로 마감돼 있어 자석으로 드로잉, 치수 메모 등을 붙였다 뗄 수 있 햇살론 연체 다.
작업실 공간 한편 그가 해온 작품들이 모여 있다. 그는 지나온 작업물을 보고 또 다른 영감을 얻는다. /한유진 저소득층 기준 기자/
작업실 공간 한편 그가 해온 작품들이 모여 있다. 그는 지나온 작업물을 보고 또 다른 영감을 얻는다. /한유진 기자/
◇영감과 영감 적금 풍차돌리기 이 연결되는 작업실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7~8년간 유학을 마치고, 2015년 고향 마산으로 돌아와 작업실을 구해야 했다. 창원은 임대료가 너무 비쌌고 반지하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 공간을 찾아 다니다가 수산교를 넘어 밀양으로 오니 가격이 확 내려가고 선택지도 넓어졌다. 거리도 크게 멀지 않아 2016년에 자연스럽게 이곳에 오게 됐다. -작업실에서의 하루 작업 리듬이 궁금하다.
△계절에 따라 다르다. 봄·가을에는 아침에 와서 저녁까지 머무르고 작업에 몰입하면 자정을 넘기곤 한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해가 진 뒤부터 새벽까지 작업한다. 평균적으로 하루 10시간 이상을 작업실에서 보낸다. 마산 집과 밀양 작업실을 오가는 단순한 동선 속에서 하루가 흘러간다.
작업실 한편 마련돼 있는 그의 작품들./한유진 기자/
작업실 한편 마련돼 있는 그의 작품들./한유진 기자/
산책. 2022 모터,신발,철, 동작센서 가변설치.
산책. 2022 모터,신발,철, 동작센서 가변설치.
-공간 곳곳에 붙어 있는 드로잉도 눈에 띈다. △영감이 떠오르면 먼저 종이에 그려본다. 이렇게 그리다 중요한 건 모아두었다가 한 번씩 펼쳐 보기도 하고 괜찮다 싶으면 실제 크기를 계산한다. 어떻게 자르고, 볼트를 넣고 어떻게 적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작업실 벽은 철판으로 마감해 자석으로 드로잉, 치수 메모 등을 붙였다 떼며 생각한다. 한쪽 벽에는 지나온 작업 사진들을 붙여 뒀다. 벽 전체가 생각의 지도이자, 작업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최수환 조각가.
최수환 조각가.
작업실에서 철판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최수환 조각가.
작업실에서 철판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최수환 조각가.
-이 작업실은 어떤 공간인가. △집보다 오래 머무는 곳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만큼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현재 다른 작가 한 명과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다. 혼자 문을 닫고 몰입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 커피 한 잔 마시며 숨을 고르는 휴식 공간, 자재를 자유롭게 쌓아둘 수 있는 작업장까지 모두 필요하다. 이곳은 내 시간 대부분이 흘러가는, 나의 삶의 중심이다.
창문. 2010 유리, 철 가변설치.
창문. 2010 유리, 철 가변설치.
하늘 문. 2019 스텐, 혼합재료 400×200×200cm
하늘 문. 2019 스텐, 혼합재료 400×200×200cm
◇조각의 언어로 세상을 잇다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면. △최근에는 두 개의 공간을 설정해 조형적으로 연결하는 언어를 자주 사용해 왔다. 그 두 개는 안과 밖일 수도, 과거와 현재처럼 시간의 층위일 수도 있다. 예컨대 양쪽에 문을 달고 한쪽을 열면 반대쪽도 동시에 열리거나 닫히는 구조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내가 서 있는 장소에서 나의 부재를 자각하게 된다.
또 제가 다닌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복도와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 건물을 하나의 공간으로 접합했고 독일과 창원의 외국인청, 철거 전 살던 집과 현재의 집 모형도 반씩 이어 붙인 작품도 있다. 이런 식으로 제 나름의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다.
최수환 작가가 작업실 한편 마련돼 있는 창문에서 미소짓고 있다./한유진 기자/
최수환 작가가 작업실 한편 마련돼 있는 창문에서 미소짓고 있다./한유진 기자/
-3·15의거와 창동 등 고향 마산을 참신하게 풀어낸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3·15의거를 다룰 때는 정보 전달과 작가적 개입 사이의 균형을 고민했다. 우리 지역의 무게 있는 역사인 만큼 정보 전달과 상상력 사이 접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총을 겨누는 작품, 아버지의 신체를 본떠 만든 의자, 철거된 마산 회원동의 명패 등 서로 다른 요소를 한 장면에 담아 여러 층위를 동시에 경험하게끔 구성했다. 창동 작업은 상가 두 채의 벽을 터 하나처럼 쓰던 창동의 풍경에서 착안해 양쪽에 문을 달고 한쪽을 열면 반대편도 동시에 열리게 만들었다. 관람자는 어느 쪽이 출입구인지 잠시 길을 잃고 그 빈틈에서 도시의 과거와 현재, 사라진 경계와 새로 생긴 통로를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작업 과정에서 좋아하는 소재가 있다면.
작품마다 다른데 아무래도 금속, 나무, 시멘트 등 건축적인 재료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모터나 센서도 많이 다룬다.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되 내가 다룰 수 있는 선 안에서 깊이를 더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대형 작업들은 자주할 수 없다 보니 조금 더 작은 덩어리의 조각 작품을 통해 많은 실험을 하고 있다.
최수환 작가가 밀양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한유진 기자/
최수환 작가가 밀양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한유진 기자/
최수환 작가가 밀양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한유진 기자/
최수환 작가가 밀양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한유진 기자/
◇예술의 지속과 확장 -현재 관심 가지고 있는 작업이 있다면.
△국립 3·15민주묘지 기념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를 준비하면서 무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국가가 관리하는 무덤들이 많은데, 그 형태가 다양하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서사를 가진 무덤들을 재조합해 나만의 공동묘지를 작업해 보고 싶다.
최수환 작가 구상 중인 무덤 작품 모형./한유진 기자/
최수환 작가 구상 중인 무덤 작품 모형./한유진 기자/
-작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명확한 메시지보다는 작업 그 자체가 중요하다. 물론 생각하는 건 있지만 전달하는 데 너무 신경 쓰게 되면 작업의 재미가 사라진다.
예술은 결국 타인의 취향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뭔지 모르겠지만 예쁘다, 끌린다’고 느낀다면 충분하다. 저 역시 다른 작가의 작업에서 ‘저렇게도 하는구나’ 하고 영감을 얻듯, 누군가 제 작업을 통해 좋은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최수환 작가가 밀양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다./한유진 기자/
최수환 작가가 밀양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드로잉을 하고 있다./한유진 기자/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는 것. 계속하다 보면 결국 다 잘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업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지속 가능성을 더 고민하고 있다. 멍하니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루틴을 세우고 유지한다. 미술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 환경, 과정 자체가 즐겁다. 그래서 꾸준히, 단단하게, 이 삶을 이어가고 싶다. 글·사진= 한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