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게임 사이트 도메인 ㎘ 바다이야기시즌7 ㎘┧ 0.rqg933.top ∂구름과 안개에 묻혀 있다가,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안개가 사라지며 천지의 신비로움이 시야 가득히 펼쳐진다. 풍경의 감동이 가슴 가득하게 들어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학교 다닐 때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다. 백두산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저절로 우러르게 되는 민족의 영산이다. 민족신화의 발원지이고, 조상들이 기상을 펼치던 발해와 고구려 벌판을 호령하는 산이다. 백두산은 국토의 골격에서 백두대간의 머리이고, 대한민국 모든 산의 종산宗山이다.
북파에서 바라본 천지. 천지는 은행서민대출 1년 중 10개월이 겨울이다. 10월의 천지는 이미 한겨울이다. 천공天空에 바람이 불어 호수 면에 물결이 일고 있다. 사진 권혁균
백두산 여행이 결정되었을 때, 그 성스러운 자태를 알현한다는 기대감과 더불어 백두산이 지켜보았을 굴곡진 역사를 곱씹으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굴곡진 역사의 결과로, 한국자산관리공사 하는일 백두산은 우리 땅을 밟고서는 갈 수 없어, 멀리 뺑 둘러 중국을 통해 가야 한다. 압록강 너머 북한 풍경은 평온, 내 마음은 불안 인천항에서 압록강 하구인 단둥丹東까지 455km, 16시간의 뱃길을 가, 버스로 약 700km, 1박2일을 달려 백두산에 이르는 여정이다. 단둥항에 입항할 때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섬이 북한 전주저축은행이자 땅 신도군薪島郡이고, 단둥시내로 가는 도로변의 철조망 너머 황금평(벌판)도 북한 영토라니 '남의 땅' 같지 않다.
압록강의 끊어진 철교.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철교 앞에서 한복을 입은 중국 소녀가 포즈를 잡았다. 건너편은 신의주다. 오른쪽 사진은 일제 강점기 때 돈대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교량 한 칸을 비튼 모습.
단둥은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고,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백성들이 우리 영토처럼 살았던 간도間島 땅이었다. 한민족의 영혼이 서려 있어서 그랬을까, 중국은 본래 안동이라 불렀던 이곳을 중국의 이념을 불어넣은 '붉은 땅' 단둥丹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신용회복위원회 개인회생 단둥에서 신의주를 가까이 바라보는 압록강 단교斷橋, 즉 끊어진 철교에 발을 디딘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건설한 철교를,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미군이 폭격해 북한 쪽 교량은 교각만 남긴 채 파괴되었다. 입장료 30위안(6,000원)을 내고 올라서면 이 철교를 통해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중공군이 다리를 건너는 조각물이 나온다.
가까운 북한 땅. 압록강 유원지에서 보트를 타고, 강 중앙의 국경선을 넘어 북한 땅 가까이 가본다. 풍경은 평화롭지만, 마음은 괜스레 불안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섬뜩하다. 철교 끝에서 신의주를 바라본다. 소박한 건물들이 반듯하게 들어서 있지만, 단둥의 고층빌딩들에 비해서는 왜소하게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다. 부산 해운대의 고층빌딩들처럼 키를 높여 중국을 내려다보는 신의주를 그려본다. 압록강 단교에서 북쪽으로 가면, 강 건너에 '보기 좋은' 고층 아파트들이 줄을 맞추어 늘어선 섬이 나온다. 이성계가 말을 돌린 위화도다. 만일 그때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주를 지배하는 강국이 되었을까, 아니면 중국에 복속된 소국으로 전락했을까. 역사의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현지 가이드가 "저 아파트들은 이쪽 중국인과 한국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건물입네다"라고 말한다.
위화도의 고층아파트. 강 건너 중국인과 한국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빌딩이라고 한다. 예전에 이성계가 말을 돌렸듯이. 지금 우리도 건너지 못하는 위화도.
위화도에서 북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강변 유원지河口景區에서 보트를 탔다. 압록강의 중간이 중국과 북한의 경계인데 보트는 경계를 한참 지나 동쪽의 북한 땅에 근접한다. 옥수수밭이 빼곡한 야산 아래에 회색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이 덩그러니 앉아 있고, 황톳길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북한 사람이 보인다. 보트에서 슬쩍 북한의 강물에 손을 적셔 보았다. 물은 미지근하고 풍경은 평화로운데, 괜스레 마음은 불안하다. 백두산 천지를 향한다. 천지에 오르는 길은 네 곳이 있다. 중국에 북파, 서파, 남파, 그리고 북한에 동파가 있다. 파坡는 고개를 의미한다. 여행사 프로그램은 보통 가까이 있는 북파-서파, 서파-남파로 짜여 있거나, 북파-서파-남파를 함께 구경하는 일정도 있다.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 1950년 10월 19일,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평양을 탈환한 날,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의 모습을 기념하는 조각물이 철교 입구에 세워져 있다. 뒤편 건물은 압록강과 북한 뷰를 볼 수 있는 호텔.
백두산 4개의 고개, 4파坡 고개마다 천지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워낙 구름과 안개와 눈·비가 잦아 천지를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이틀이나 사흘을 다니면서 하루는 맑은 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사흘 내내 흐린 날도 많아서 '천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생겼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북파다. 관광거점인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출발해 백두산 입구에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72개의 굽이 길을 휘둘러 오른 후, 잠깐 걸어 천지 앞에 선다. 인파에 떠밀려 짧게 천지를 일견한 후 인근의 장백폭포를 구경하며 온천물에 익힌 달걀을 맛본다.
남파를 향하여. 천지 가는 산길 왼쪽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듯한 봉우리 모습 / 탐방로 바로 옆에는 '북한 영토이니 넘어서지 말라'는 철조망이 길게 이어진다.
두 번째로 많이 가는 곳은 서파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1,442개의 계단을 쉬엄쉬엄 30분쯤 올라서면 천지다. 길 주변은 온통 야생화가 가득한 초원이다. 서파에서 바라보는 천지의 시야가 가장 넓다. 날씨가 좋으면 16개 봉우리가 다 보인다. 서파 입구에는 깊은 '용암 골짜기'인 금강대협곡이 있다. 최근에 개방된 남파는 예약제로 하루 2,0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인파에 밀려 사진 한 장 찍기 어려운 북파, 서파에 비해 남파는 사람이 적고, 천지를 매우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철조망 너머는 바로 북한이다. 그래서 '서늘한' 분위기가 있다. 도로 중간에 내려 압록강 발원지인 압록강대협곡을 구경할 수 있다. 4파 중에서 북한 땅 동파에서 바라보는 천지 풍경이 최고라고 한다. 남파에 올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어 바라본 동파는 거칠고 가파르다. 스카이라인의 맨 위에 백두산의 최고봉인 해발 2,744m 장군봉이 우뚝하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다음호에 계속>
백두산의 야생화들.
백두산 쏠쏠 정보 서파西坡 ⊙ 초록 구릉 위로 셔틀 미니버스를 타고 1시간쯤 올라간다. 주차장에 내리면 1,442 계단과 꽉 차서 올라가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버스에서 하차하면 산 아래보다 훨씬 서늘한 기온을 느끼게 된다. 바람도 불어 바람막이 점퍼를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중국관광객과 한국관광객이 반반이다. 대략 1시간 30분의 시간을 준다. ⊙ 천지를 향해 오르는 초반의 경사는 완만하다. 중간쯤 가면 사람들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가마 타고 오르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부끄러워서인지 모두가 쳐다봐서인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계단 1,000개를 넘어서면 발걸음이 더뎌진다. 천지까지 평균 40분 걸린다. 주변은 야생화 풀밭이다. ⊙ 서파 정상은 소란스럽다. 인파가 몰려 천지가 보이는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다가가기가 어렵다. 천지는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듯 장관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저런 잉크빛 호수가 있다니, 놀랍다. 북파北坡 셔틀버스가 30m 간격으로 줄을 지어 올라간다. 속도도 빠르다. 버스 간 간격이 좁아지거나 넓어지지 않는다. 서파보다 접근이 쉬운 대신 사람이 더 많다. 백두산의 신성함을 느끼려면 비수기에, 겨울에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시야는 좁다. 천지 둘레 전체가 조망되진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아 포토존 확보가 거의 불가능하다. 개미떼처럼 올라오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 사람에 밀려 내려가야 한다. 기후 ⊙ 연 평균기온 5.4°C. 9월 하순부터 4월 하순까지 0°C 이하. 한겨울에는 영하 50°C까지 떨어진다. 천지의 20억 톤 물이 몽땅 얼어붙는다. 7~8월에만 비가 내리고,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는 눈이 내린다. 8개월의 겨울과 4개월의 봄-여름-가을이 있다. ⊙ 4개월의 봄-여름-가을 동안 식물들은 너무 바쁘다. 잎과 꽃을 내고, 열매를 맺고, 서둘러 씨를 뿌린다. 그러고 나서 1년생 식물들은 영원히 사라지고, 다년생 식물들은 자기들의 유전자가 담긴 '압축된 몸'을 땅속에 은신하고 기나긴 동면에 들어간다. ⊙ 백두산 정상에는 안개가 자주 끼고 눈비가 자주 내려 맑은 하늘과 천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안개가 끼는 날이 1년 중 240일. 완전히 맑은 날은 30일 이하다. ⊙ 백두산 천지는 기상변화가 매우 심한 곳이다. 습한 공기와 건조한 공기.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 동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해풍이 만난다.
북파의 화산재가 쌓여 봉우리를 이룬 곳.
높이 자국의 측량자료에 따라 최고봉인 장군봉은 한국은 2,744m, 북한은 2,750m, 중국은 2,749m이다. 2,750m로 합의되는 경향이 있다. 천지 ⊙ 화산이 분출할 때 마그마가 터져 나오던 화산의 중심부가 함몰되어 생겨났다. '칼데라'호이다. 천지 주변에는 해발 2,500m 이상의 16개 봉우리가 있다. ⊙ 천지 면적은 9.2k㎡. 둘레 14.4km, 최대 깊이 384m. 세계의 산상 호수 중에서 가장 깊다. 수면의 해발 높이는 2,257m.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담수량 20억 톤. 천지 둘레의 산에서 유입된다. 고도차이 약 500m. ⊙ 천지 둘레의 절벽에서는 계속 돌무더기들이 무너져 내린다. 부서지기 쉬운 화산암에서 떨어지는 낙석이다. 산사태처럼 위험한 돌사태다. ⊙ 백두산에서만 20년 이상 사진을 찍었다는 안승일 작가는 어느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천지물이 '짠 눈물맛'이라고 했다. 혀에서는 청량하지만, 가슴으로는 눈물맛이라는 의미. 역사 ⊙ 약 100만 년 전 화산작용으로 만들어진 산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백두산에 국가의 기원을 두고 있다. ⊙ 조선시대에는 확실히 조선의 산이었지만, 만주벌판(간도)이 중국의 영토가 되면서 중국과 조선의 국경이 되어 산을 분할했다. 중국 정부는 1998년부터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으로 개칭했다. 화산 분출 1413, 1668, 1702, 1903년에 분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2년 6월 3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하늘과 땅이 갑자기 캄캄해졌고, 불꽃과 연기가 일어나는 듯했다. 큰 화로에 들어앉아 있는 듯 몹시 무더웠다. 흩날리는 재가 눈처럼 떨어졌는데 그 높이가 한 치가량 됐다'고 한다. 언제 또 분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세계적으로 지진, 화산 폭발, 홍수, 가뭄, 쓰나미 등의 재난이 빈번해서 백두산이 터질 확률은 높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