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한 명당 ‘입법 활동 보좌’ 최대 9명 법적 자격·절차·기준 없이 ‘사적 채용’ 국회는 세평 중요…부조리 은폐 쉬워 “전직? 의원은 기업도 괴롭힐 수 있어”
ibk기업은행 체크카드 정당·시민단체서 함께 고생·경험 공유 의원 영전하면 고위공직 기회 얻기도 “운명 공동체…사적 심부름도 하게 돼” “국가가 공적으로 채용 제도 개혁해야”
상임위별 공채 후 의원실 파견하거나 우리은행 신용대출 서류 임기제 전환, 안정성 높여야 할 필요성 미국은 수백쪽 의원 ‘윤리 매뉴얼’ 제정 윤리특위 상설화해 감독하는 방안도
“수행비서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원 배우자와 자녀들을 돌보고, 주말엔 의원과 함께 골프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원 집안 경조사에 보좌직원들이 동원돼 때 ktx할인이벤트 로는 혼주 측, 때로는 상주 측을 맡기도 한다. 가족 휴가지 예약과 교통편 준비는 이제 사적 업무 영역으로 취급되지도 않는다. 과연 강선우만의 문제일까.” 국회의원 보좌직원들의 익명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지난 7월 올라온 글이다. 당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에 내정되자 보좌진에게 변기 수리와 음식물 처리를 11월금리인상 지시했다는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강 의원은 내정 한 달 만에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이재명 대통령님께도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후보자에서 사퇴했다. 보좌진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사적 채용’이 갑질의 근본 원인 인터뷰에 응한 여야 보좌진은 갑질의 근본 원인으로 국가공무원인 보좌직원을 국회의원 개인이 마음대로 채용하고 해고하는 ‘사적 채용’ 제도를 지목했다. 의원은 입법활동을 지원하는 보좌직원을 최다 9명까지 고용한다. 보좌관(4급) 2명, 선임비서관(5급) 2명, 비서관(6~9급) 급수별 1명씩, 인턴비서관 1명을 고용할 수 있다. 보좌직원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국회사무처에 소속돼 급여를 받지만 임면권은 의원 개인이 가진다. 기자가 국회사무처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30일 개원부터 올해 9월15일까지 1년4개월간 22대 국회의 전체 보좌직원 면직 건수는 1736건이었다. 보좌직원의 직급 변동과 의원실 이동을 포함한 수치이지만 의원실마다 약 6건의 면직이 이뤄진 셈이다. 22대 국회에서 면직이 가장 많은 의원실의 경우 26건에 달했다. 전체 면직 건수를 직급별로 보면 보좌관 306건, 선임비서관 427건, 비서관 1003건으로 나타났다. 보좌직원 채용은 법률로 정해진 자격, 절차, 기준이 없다. 많은 채용이 사적 인연과 추천을 통해 불투명하게 이뤄진다. 보좌직원이 현재 의원실에 염증을 느껴 다른 의원실로 옮기려 해도 기존 의원실과 주변 세평이 중요하다. 의원에게 문제제기를 하다 ‘찍히면’ 국회 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의원실 내 부조리를 피해자 스스로 은폐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A선임비서관은 “여의도 바닥에서 나쁜 소문이 나면 저희는 갈 데가 없다”며 “피해자가 여의도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민간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의원이 마음만 먹으면 그 기업을 괴롭혀 피해자가 일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는 의원과 보좌진을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는 동지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다. 의원이 대통령실, 장관, 시장, 도지사로 ‘영전’하면 보좌진도 따라서 고위공직을 차지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 함께 위기를 이겨냈던 경험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도 많다. 의원이 보좌진의 동지라는 집단적 정체성은 피해자가 ‘동지의 갑질’을 고발하기를 주저하게 한다. B보좌관은 “보좌진은 의원이 잘돼야 자신도 잘되기 때문에 실제 운명공동체가 되고 사적 심부름도 하게 된다”며 “국가가 공적으로 의원 사조직을 뽑아주는 채용 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원 말 한마디에 밥줄 끊길 사람들 의원 개인이 보좌직원 채용의 전권을 가진 현행 제도는 의원들이 각자의 정치적 목표에 맞춰 보좌진을 구성하도록 재량을 폭넓게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법률에 보좌직원의 신분과 직무 범위, 임용 자격과 절차를 명확히 규정해 신분의 안정성과 채용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이어져왔다. 현재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는 보좌진의 정원·보수 외에 사실상 아무 규정이 없다. 국회사무처에서 공개 경쟁 채용시험으로 보좌직원을 선발해 풀(POOL)을 만들고 각 의원실에 파견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다만 한국 정치의 현실적 요건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많다. 국회사무처에서 상임위원회별 전문인력을 보좌관으로 채용해 의원실에 파견하고, 비서관은 개별 의원이 채용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식이다. 보좌직원의 입법·정책 역량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C보좌관은 “공적 경쟁 채용으로 바뀌어서 제가 잘린다고 해도 사적 채용보단 그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보좌진을 사무처에서 뽑는다면 의원들이 언행을 조심하지 않겠느냐”며 “제가 보좌관 일을 하는 이유는 입법의 보람이 99%인데 의원의 이상한 지시를 이행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보좌직원을 임기제 공무원으로 전환해 신분을 일정 기간 보장하는 방법도 제기된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보좌직원 모임인 보좌진협의회가 있지만 법적 보호 장치가 없기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조합처럼 자기 권익을 주장할 수 없다. D비서관은 “의원 말 한마디에 밥줄이 끊길 사람들인데 뭉쳐봐야 귀를 기울이겠느냐”고 했다. 의원의 해고 통보에는 사실상 저항할 방법이 없다. D비서관은 “국민을 위해 유능한 인재를 뽑아야 하기에 보좌진은 완전한 정규직이 돼선 안 되는 직업”이라면서도 “자격시험으로 뽑은 뒤 계속 재계약하는 방법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노동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보좌직원 제도에도 변화는 생겼다. 2022년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권리를 일부 받아들여 의원이 보좌직원을 해고할 때 30일간의 예고기간을 두는 법 조항이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의원이 국회사무총장에게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는 즉시 면직 처리됐다. 미국처럼 윤리특위 상설화해야 의원이 보좌진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매뉴얼을 국회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강 의원의 갑질 논란 당시 언론에 보좌진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는 지난 8월 보좌진 인권·처우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를 벌여 당에 건의할 사항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국회는 윤리 매뉴얼을 제정해 의원이 보좌진에게 지시할 수 없는 일을 상세하게 규정했다. 미국 상원은 530쪽, 하원은 430쪽의 윤리 매뉴얼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의원이 매뉴얼을 어기면 윤리위원회가 조사해 견책·경고·벌금·제명 등 징계를 내린다. 하원 매뉴얼을 보면 “직원들은 의원 등 다른 사람을 대신해 비공식적, 개인적 업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공적 기금의 보상을 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의원이 보좌직원에게 집 청소, 장보기, 우편물 처리, 선물용 기념품 제작, 개인 회사의 회계 업무 등을 지시해 징계를 받은 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다만 의원의 세탁물을 수거하고 차량을 운전해 가족을 워싱턴 시내에 데려다준 행위가 ‘특정 상황에선 공무 수행에 중대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법원 판례도 실었다. 미국 하원처럼 윤리특별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설치해 의원들의 비위를 상시 감독하는 방안은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여야가 합의해야 윤리특위를 가동하는데, 한국 윤리특위는 외부 인사 없이 의원들로만 구성돼 징계를 심사하기 때문에 ‘제 식구 감싸기’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게다가 22대 국회 개원 이후 여야의 극심한 대립으로 윤리특위는 구성도 되지 못한 상황이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리특위 상설화에 더해 윤리특위 심사에 대한 외부 감시도 강화해야 의원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규제할 수 있다”며 “한국의 정치 수준을 높일 방법은 많지만 결국 의원들 스스로 개혁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