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정인이의 묘소가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메모리얼 공원에 마련된 모습. 2025.9.30/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양귀비예시
(양평=뉴스1) 유채연 박응진 박동해 한수현 신윤하 김종훈 기자
딸 둘, 지금은 다 컸는데도 어릴 때 생각이 나고 너무 마음이 안 좋네.
지난달 30일 오후 정인이 묘소가 있는 경기 양평군 안데르센 메모리얼 공원오리자날 양귀비 을 찾은 정 모 씨(59세·여)는 "묘를 보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다"면서 자기 자녀들과 관련해 이처럼 여러 차례 되뇌었다.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5주기를 약 2주 앞둔 이날, 정인이의 묘소는 한적했지만 쓸쓸하진 않았다. 수목장으로 치러져 작은 나무와 함께 공원에 자리한 정인이의 묘소에는 사람들이 최근까지 찾은공모주펀드 흔적이 엿보였다. '우리 딸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적힌 '정인 나무' 현판 맞은편에는 초승달 모양 눈으로 웃는 정인이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추모 글귀 명패가 놓여 있었다. 그 주변은 추모객들이 심거나 가져다 놓은 꽃들과 강아지·곰돌이·고양이 인형들로 알록달록해 마치 어린아이가 놀다 간 장소 같았다. 곰 인형은알라딘다운로드 새벽이슬에 젖었지만 때 타지 않은 흰색이었고, 상표조차 뜯지 않은 손바닥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어린이 운동화는 형광 분홍빛 끈을 뽐내고 있었다. 투명 플라스틱 상자 속에는 양말과 샛노란 니트 등이 곱게 접혀 있었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는 제목의 그림책과 레고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정인이 묘소를 관리하는 송래호 목사는 "비 맞으니황금성배당 까 (추모객들이) 이렇게 해서(플라스틱 박스 등에 넣어서) 가져다 놓곤 한다"며 "여기 있는 운동화와 샌들도 지난주쯤 추모객이 새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3~4팀씩은 꾸준히 찾아온다"면서 "이제 그 시기(정인이 기일)가 다가오는데, 그땐 개별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미리 와서 새로 세팅과 관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인이를 찾는 이들 중엔 학부모가 유달리 많다고 한다. 송 목사는 "아무래도 정인이가 컸으면 벌써 유치원생이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 가자'며 온다"고 했다. 공원 측이 보관하고 있는 추모객들의 메시지들엔 '미안하다'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정인이를 묘소에 직접 안치했던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는 "아이에게 하는 표현은 아니더라도 (정인이에겐) 송구스럽다"라며 "5살 손녀도 가끔 데리고 간다. 다른 어떤 의미보다 여기에 이런 슬픈 아이도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억울하고 아픈 죽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해외에서도 정인이를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육아카페를 중심으로 정인이 사건이 널리 알려져 한국을 방문해 정인이 묘소를 찾는 중국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는 게 송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 엄마들이) 자기 딸이 좋아하는 인형을 두 개를 사서 한국 올 일 있으면 하나씩 가져온다"며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와서 2시간 동안 앉아서 울고 가더라"고 말했다. 자신을 '버지니아 엄마'라고 소개하는 미국의 한 학부모는 몇 년째 정인이의 생일과 기일마다 국제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지난 3년간 정인이를 잊지 못한 사람들이 정인이 묘소로 가져온 사진과 액자들 2025.9.30/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사람들은 정인이를 학대 전 해맑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이날 정인이 묘소를 찾은 이상욱 씨(64세)는 "아기 예뻤는데, 그 얼굴이 떠오르네 갑자기"라며 먼 산을 응시했다. 그는 "사진 볼 때 너무 슬펐다"며 "(정인이를) 많이 기억한다. 제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인이 묘소를 관리하는 사단법인 하이패밀리는 약 3년간 정인이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보낸 편지, 사진과 액자 등을 보관 중이다. 정성스럽게 짜깁기해 액자와 편지에 붙인 사진, 그리거나 비즈공예로 묘사한 정인이는 상처 하나 없는 얼굴로 활짝 미소 짓는 모습이었다. 정인이의 사망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회한으로 기억된다. 이 씨는 "그 사건 자체가 분노를 넘어선 사건이었다. 아니, 분노로는 표현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도 영아 폭력, 폭행 치사 사건들이 뉴스에 나온 것만 몇 건이 되지 않았나"라며 "정인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어린아이의 생존권과 생명에 대해, 그리고 그 아이들에 대한 부모와 사회의 책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대표도 "아이를 데리고 온 분들은 자기반성의 발걸음이었지 않나 싶다. 야단도 치고 소리도 쳤던 것이 미안하기도 해 그만큼 더 왔던 거 아닌가"라면서 "모든 정인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kit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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