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쇠창살로 막혀 있는 곳이 눈에 띈다. 시아누크빌=허경주 특파원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250㎞가량 떨어진 시아누크빌. 차이나타운 인근에 자리한 이 도시 최대 ‘웬치’ 단지에 들어서자 쇠창살이 빽빽하게 막힌 회색빛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웬치는 동남아시아 보이스피싱 조직 사이에서 쓰는 은어로 범죄 단지를 뜻한다. 중국어 위안취(园區·단지)에서 유래했다. 이곳에서는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등 각종 불법 온라인 사기 범죄가 일상처럼 자행된다. 한국인을 포함해 각국에서 온 청년들은 중국계 조직에 의해 납치·감금돼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긴 채 강제로 사기 행 무직자사금융대출 각에 가담한다. 저층부를 가득 메운 철창은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달아나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높이 3~4m 콘크리트 벽으로 빙 둘러싸여 있어 마치 교도소처럼 보였다. 벽 위엔 철조망이 쳐 있고 깨진 유리 조각까지 박혀 있었다. 곳곳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놀라운 발견 생활의 지혜 15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한 범죄 단지 벽에 쇠창살과 유리 조각이 놓여 있다. 탈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아누크빌=허경주 특파원
보원 요원들은 삼엄한 경계를 섰다. 기자가 차량에서 내려 사진을 찍자 그중 한 명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단지로 별내신도시 아파트 전세 들어가는 출입구는 단 한 곳뿐. 무장한 요원들은 출입 차량 탑승자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단지를 운영하는 총책은 대부분 중국인이다.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인 보스·한국인 중간책’ 구조가 일반적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캄보디아 전역에 이런 형태의 범죄 단지가 최소 53곳 있다고 추산한 최저 다. 인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교민은 “이 근처 단지의 경우 건물 내에 자체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며 “카지노나 건물에서 김밥 김치 등 배달 주문도 종종 온다. 가보면 1층에서 중국인이 주로 픽업해 간다”고 설명했다.
15일 캄보디아 자동차담보대출은 SK다이렉트론 시아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높은 벽으로 막혀있다. 시아누크빌=허경주 특파원
범행은 이런 ‘잿빛 콘크리트 단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내 중심의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 건물에도 대부분 ‘웬치’가 있다. 이날 시아누크빌 지방경찰청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 두 명 역시 시내 호텔 13층에 갇혀 보이스피싱을 강요받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다. 15층 건물의 1~10층은 일반 객실, 11~15층은 범죄 조직 거점으로 쓰이는 형태다. 한 교민은 기자가 머무는 호텔을 가리키며 “이곳도 한때 웬치로 사용되다가 호텔로 바뀐 곳”이라고 설명했다. 시아누크빌 교민회장이자 현지에서 감금된 한국인 구출 활동을 하는 오창수 선교사는 “시아누크빌 전체가 사실상 감옥 도시”라고 설명했다. 전날 밤에도 호텔 카지노 건물에 갇혀 있던 20대 한국인 청년이 오 선교사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개구멍’ 인근에서 접선하려 했지만 결국 탈출을 포기했다. 보안요원의 감시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에서다.
시아누크빌의 호텔. 상층부에 보이스피싱 거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아누크빌=허경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