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버블의 재현일까, 인공지능(AI) 산업이 이끄는 뉴노멀의 시작일까. 미국 뉴욕 증시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증시가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면서 시장에선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증시의 적정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에서도 현재의 주가 수준은 고평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부에선 과거의 기준으로 AI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주가가 우상향할 것이란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미국 뉴욕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3배에 육박하며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S&P500의 PER이 지금보다 높았던 시기는 1999년 말 닷컴 버 신협인터넷뱅킹 블과 2020년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장세 때밖에 없었다.
S&P PER 최고 수준…버핏 지수도 '불장난' 단계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019년 5월 4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주주총회에 참석해 아이스 sbi저축은행 모델 한지우 크림을 먹고 있다. 오마하=로이터 연합뉴스
'오마하의 현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이 '밸류에이션을 보여주는 최고의 단일 지표'라고 칭한 '버핏 지수'도 이미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미국 상장주식 시가총액을 국민총생산(GNP)으로 나눈 값으로, 현재 217%에 달한다. 닷컴버블(140%)과 씨티카드 코로나19 직후 유동성 랠리(190%)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다. 통상 비율 80% 이하는 저평가, 80~100%는 적정, 100% 초과는 고평가로 본다. 버핏은 "200%에 접근하면 불장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역시 지난달 23일 "여러 지표로 볼 때 증시가 상당히 고평가된 상태"라고 언급하며 보증인대출서류 거품 논란이 더 확산했다. 특히 AI 기업의 고평가가 매우 두드러진다.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의 PER은 600배에 이를 정도로 튀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25년 2분기 보고서에서 "AI 상위 20개 기업의 평균 PER과 주가매출비율(PSR)이 S&P500 평균치보다 30~40% 높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AI 개인사업자 소득공제 관련주 중 일부는 기술 성과 대비 40% 이상 고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AI 혁명 새로운 기준으로 바라봐야"
게티이미지뱅크
거품 논란에도 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솟고 있다. 일부에선 AI를 비롯한 혁신 기업의 경우 과거의 기업 평가 잣대로 봐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fA) 주식·퀀트 전략 책임자인 사비타 수브라마니안은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재 미국 증시는 과열됐다고 볼 수 있지만 과거와 다르다"며 "현재 S&P500 구성 종목들이 과거 수십 년 전보다 낮은 재무 레버리지, 더 낮은 이익 변동성, 향상된 효율성 그리고 더 안정적인 마진을 갖추고 있어 이러한 높은 밸류에이션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과거 시대로의 평균 회귀를 기대하기보다, 오늘날의 밸류에이션 배수를 새로운 기준(new normal)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공동 창업자인 하워드 막스 회장 역시 "실제로 매그니피센트7(M7) 기업의 PER은 평균 약 33배"라며 "이는 분명 평균 이상의 수치이지만 이 기업들의 탁월한 제품, 상당한 시장 점유율, 큰 이익 증가율 그리고 강력한 경쟁 우위를 고려할 때 그다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쟁의 결론은 내지 못해도, 당장은 버블을 즐기자는 분위기도 읽힌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30일 보고서를 통해 세계 주식 투자 의견을 기존 '중립(Neutral)'에서 '비중 확대'로 상향했다. 기업 실적 성장세와 경기 침체 없이, 예고된 연준의 추가 금리인하와 글로벌 재정정책 완화가 증시를 지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12개월 전망도 비중 확대를 유지했고, 연말 S&P500 목표치는 6,800으로 높였다. 시장에선 3분기 실적 발표를 주목하고 있다. 실적이 기대치에 부합할 경우 주식 고평가 논란은 잦아들고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 시장의 버블 우려, 밸류에이션 부담 등이 계속 언급되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실적"이라며 "주도 성장 산업 추세가 견고하므로 지금 주목받는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