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세계 경제의 언어다. 미국이 인쇄기 스위치를 누르는 그 순간, 종이에 찍힌 숫자와 발행량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명령어이자 질서를 이루기 때문이다. 단순한 화폐를 넘어 달러는 자본의 흐름을 구조화한다. 저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자는 국제 경제 담론에서 발언조차 불허된다. 한 세기 동안 달러 패권은 시대정신이었다. 이를 '팍스 달러(Pax Dollar·달러가 세계 질서 중심이 된 시대)'라 부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게 있던가. 오늘날 팍스 달러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란 경제 거인 옆에서 또 다른 거인인 중국이 위안화를 손에 쥐고 부상하면서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신간 '달러 이후의 질 군미필대학생학자금대출 서'에서 쩍 갈라진 성벽의 틈을 들여다본다. 달러 제국 미국의 충실한 파트너였던 중국으로 인해 달러 패권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그래도 달러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이번엔 다르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달러 질서는 과연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미국이 경제 패권국으로서 한 세기를 지배했던 이유는 경제력과 신뢰도 그리고 안정성 숨김파일및폴더표시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유동성을 가진 시장, 제도의 예측 가능성, 군사 영향력 등의 실력과 평판은 미국의 달러를 '전 세계가 기꺼이 돈을 맡기고 싶은 나라의 통화'로 만들었다. 달러에 도전한 나라들은 모두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저자는 소련의 루블화, 일본의 엔화를 돌아보면서 '이들은 모두 달러의 위상에 도전했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집합명사의예 언어는 역시 달러였다'는 서두로 책을 연다. 하지만 중국의 탈(脫)달러 행보는 달러의 위상을 뒤흔들고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화를 달러에 연동시키며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위안화와 달러의 탈동조화가 가시화할 조짐을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소속된 브릭스(BRICS)는 달러가 바로연결 아닌 위안화 결제 행보를 보이고 있고, 미국의 우방국들에서도 비(非)달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라고 책은 냉엄하게 분석한다.
달러 이후의 질서 케네스 로고프 지음, 노승영 옮김 윌북 펴냄, 2만9800원
채무불이행 확인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중국이 "위안화를 독립적으로 움직이겠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국 금리에 맞춰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버린다면? 이는 달러 패권의 세상에서 '대륙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사건일 수 있다. 암호화폐(가상화폐) 역시 달러의 위상을 수직 낙하시킬 위험이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정부가 규칙을 만드는 게임에서는 어떤 사적(私的) 통화도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며 암호화폐의 '달러 대체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면서도, 암호화폐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치부하긴 힘들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정한 '게임의 규칙' 이면에서 비트코인은 이미 실질적인 가치를 획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보기 드문 양서인 까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욕망과 그에 따른 실익을 근원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달러 패권은 그저 '권력자의 순순한 희열'이 아니다. 팍스 달러는 그 자체로 미국에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다. 달러 패권을 가진다는 건 외국인들이 다량의 미국 부채를 기꺼이 보유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지급해야 하는 금리를 낮출 수 있다. 미국은 돈을 빌리면서도 이자를 적게 낸다. 2024년 기준으로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국 재무부 채권은 6조7000억달러(약 9380조원),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 채권까지 포함하면 8조2000억달러(약 1경1480조원)에 달한다. 미국의 달러 패권은 힘의 우위에 기초했다. 그러나 '가장 큰 멜트다운은 종종 아무도 예상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는 저자의 경고는 서늘하다. 세계 질서의 단일한 지배체제는 천부적인 권좌가 아니라 유동적 합의와 협상의 결과였으므로 달러 역시 균열을 겪으며 관계의 변화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가장 밀접한 한국은 달러 패권의 균열을 바라보며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까. 이 책은 단지 어려운 수식으로 가득한 경제학 저서가 아니라 '달러'라는 불가피한 공용 경제 언어를 중심으로 권력의 구조를 해부해낸다. 벤 버냉키, 니얼 퍼거슨, 퍼리드 저카리아 등 명사와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해외 언론이 한목소리로 "달러 패권의 몰락 가능성을 해부하고 전망한 역작"으로 상찬한 책이다. 원제 'Our Dollar, Your Problem'.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