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시내 도로와 3번 국도를 연이어 갈아타고 1시간가량 차로 달리자 거대한 '태자(太子) 단지'가 나타났다. 영어 단어 'prince'(왕자)를 한문으로 바꾼 이름이다. 한때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범죄 구역으로 꼽혔던 곳으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을 감금한 채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을 하던 삼성생명 담보대출 이른바 대규모 '웬치'(범죄단지)였다. 태자 단지도 사기 범죄 단지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천즈 회장의 프린스 그룹이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단지는 국도에서 시골길 같은 비포장도로로 빠져 한참을 더 들어간 깊숙한 곳에 있었다. 논 주변 도롯가에는 허름한 단독주택이 드문드문 서 있었고, 음료수와 담배를 파는 작 국민주택기금 수탁은행 은 슈퍼마켓도 영업 중이었다. 4층짜리 빌라 형태 건물들이 밀집한 태자 단지는 5m가량 되는 거대한 성벽 같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꼭대기에 철조망이 쳐진 담장 주변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방치돼 있었으며 주변에는 들개들도 어슬렁거렸다.
태자단지 출입게이트 흔적 (프놈펜=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ㆍ감금이 잇따라 발생하며 정부가 대응에 나선 가운데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 외부 초소에 출입게이트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남아 있다. 태자단지는 현재 캄보디아 군경에 의해 관리 일시상환 되고 있다. 2025.10.16 dwise@yna.co.kr
입구 경비초소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래 방치돼 거미줄이 쳐진 보안 검색대가 보였다. 평소 관리자나 외부 손님이 드나든 것으로 추정되는 검색대 앞은 담장을 뚫고 설치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초소에서 나온 뒤 '혹시 나이키직수입정품 누군가가 안에 있나' 싶어 다른 대형 철문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자 갑자기 검은 티셔츠를 입은 현지인 남성이 불쑥 나타났다. 그의 옷에는 영어로 'POLICE'(경찰)가 적혀 있었다. 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고 쏘아붙였고, 동행한 현지인 가이드가 특파원을 가리키며 "한국 대사관에서 잠깐 나왔다"고 둘러대자 굳었던 얼굴이 다소 풀어졌다.
캄보디아 태자단지 취재 내용 확인하는 현지 경찰 (프놈펜=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ㆍ감금이 잇따라 발생하며 정부가 대응에 나선 가운데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에서 현지 경찰이 단지 인근 취재활동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 태자단지는 현재 캄보디아 군경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2025.10.16 dwise@yna.co.kr
캄보디아 내무부 소속이라고 밝힌 이 경찰관은 "안에 아무도 없느냐"는 물음에 "지난 6월부터 경찰관과 군인을 합쳐 30명이 태자 단지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단속해 중국인들은 본국으로 추방하거나 교도소에 보냈고 캄보디아인들도 처벌했다고 덧붙였다. 태자 단지 앞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50대 현지인은 "예전에는 중국인들이 단지 안에서 많이 나와 담배랑 음료수를 사 갔다"며 "그때도 밖으로 나오는 한국인은 없었다"고 기억했다. 인근 또 다른 슈퍼마켓 주인은 특파원이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뒤 "잠깐 구경 왔다"고 하자 느닷없이 "한국인 대학생을 캄보디아인들이 죽였냐"며 화를 냈다. 그는 "지금 한국 정부와 언론 보도로 캄보디아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더는 말하기 싫다고 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망고단지' 모습 (프놈펜=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ㆍ감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로 알려진 '망고단지'의 모습. 2025.10.16 dwise@yna.co.kr
과거 태자 단지, 원구 단지와 함께 프놈펜 안팎에서 3대 범죄 단지로 꼽힌 '망고 단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태자 단지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인 망고 단지 입구에는 현지어를 비롯해 영어와 중국어로 '임대·판매'라는 글씨가 붉은색으로 적혀 있었다. 단지 가까이 접근하자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 남성이 다가와 "사진 찍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 남성은 조금 열려 있던 철문을 닫은 뒤 10층 높이 건물과 별관 등을 있는 태자 내부로 들어갔고, 취재진 차량이 떠날 때까지 철문 구멍 사이로 계속 지켜봤다. 프놈펜에서 범죄 단지에 감금된 한국인 여러 명을 구조한 재캄보디아 한인회 관계자는 16일(현지시간) "태자 단지와 망고 단지는 진즉에 텅텅 비었다"며 "지난해 한국 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한 뒤 올해 현지 경찰이 집중 단속에 나서자 다 떠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국과 라오스 국경 지역으로 범죄 단지를 옮겼다"면서도 "캄보디아 정부 단속이 느슨해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국경 일대는 캄보디아 경찰 단속이 느슨하고 감금자들이 도주하기도 어렵다. 최근 한국 정부가 합동대응팀을 파견하고 언론도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서자 전날 시아누크빌에서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웬치를 정리하고 떠났다. 오창수 시아누크빌 한인회장은 "어젯밤에 웬치 한 곳이 정리됐다"며 "컴퓨터 모니터까지 싹 들고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철조망 깔린 '망고단지' (프놈펜=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ㆍ감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16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로 알려진 '망고단지' 외벽에 철조망이 깔려있다. 2025.10.16 dwi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