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강민경 기자] 중국이 다시 '희토류 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티모니·인듐·게르마늄 등 전략광물 수출 제한이 이어지며 글로벌 공급망의 긴장이 한층 고조됐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세계의 시선이 한국 울산으로 향한다. 비철금속 제련 세계 1위이자 국내 유일의 희소금속 상업 생산 기업, 고려아연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한가운데로 올라섰다. 지난해 고려아연 전략광물 매출은 1810억원. 올해 2분기까지 이미 236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실적을 훌쩍 넘어섰다. 전략광물은 매장량이 적고 채굴이 까다로워 일부 국가만 생산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전 주택담보대출연체율 세계 광산서 들여온 아연 정광을 제련하는 과정 중 극소량의 금속을 추출해 제품화하는 독자 기술을 갖고 있다. 증권가에선 올해 고려아연의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윤범 회장이 주도해온 전략광물 사업이 실적을 견인하고 있어서다. 아연·연·구리 등 기초금속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안티모니·비스무트·인듐·게르마늄 등 고부가 실사진 금속을 더하며 사업 지형을 넓혔다.
고려아연 분기별 전략광물(희소금속) 매출 추이./그래픽=비즈워치
고려아연은 국내서 '전략광물 기업'으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다. 특히 올해 6월 안티모니를 미국에 처음 수출하며 무입고자동차담보대출 글로벌 공급망의 새 축으로 떠올랐다. 안티모니는 탄약·방호 합금·전자장비 등 방위산업의 필수 소재다. 한국은 이를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상 핵심광물'로, 미국은 '에너지법 2020'과 '국가방위비축법'에서 전략광물로 각각 지정하고 있다. 중국이 여전히 글로벌 안티모니 시장을 쥐고 있지만, 지난해 8월 수출 허가제를 도입한 데 이어 연말엔 직업군인 혜택 미국으로의 수출길까지 닫았다. 공급이 막히자 미국은 곧바로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 나섰고 그 자리를 채운 곳이 바로 고려아연이다. 또 지난 8월에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울산 온산제련소에 1400억원을 투입,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게르마늄은 위성·야간투시경·열화상 카메라 등 방산·우주 산업의 핵심 금속으로 중 학자금대출 상환방법 국이 전 세계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수출 통제 이후 가격이 5배 가까이 치솟자 미국은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려아연은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안티모니 국산화…킥은 '격막전해' 지난 14일 찾은 울산 온산제련소. 1978년 아연 제련공장으로 문을 연 이후 47년간 국내 제련 산업의 심장으로 뛰어왔다. 연간 100만톤이 넘는 비철금속을 생산하며 43만평에 달하는 부지 위에서 산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안티모니 공장에는 금속 더스트가 산처럼 쌓인 한켠에서 회색 잉곳(괴)이 팔레트 위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완성품은 낱개 20kg. 48개를 묶으면 팔레트 한 대, 곧 1톤의 전략자원이 된다. 가격은 이미 '전략자산'급이다. 톤당 900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7300만원 선에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올 초 대비 6배, 지난해보다 8배 가까이 오른 수준이다. "미·중 간 큰 타협이 없는 한 이 가격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황윤근 귀금속팀 파트장의 말에는 은근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 생산 현장도 분주하다. 하루 10톤, 한 달이면 300~400톤이 쏟아진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미국과 일본 등 해외로, 나머지는 국내 방산·화학업체로 직송된다. "내일 모레 40톤이 미국으로 들어갑니다." 황 파트장은 웃으며 말했다. "만드는 족족 나간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생산한 안티모니./사진=고려아연
공정은 결코 쉽지 않다. 안티모니는 고온에서 산화가 쉽게 일어나 설비를 갉아먹는다. 일반 금속 주조처럼 자동화하기 어렵다. 이에 고려아연은 브릭과 카본 같은 내식 재질로 설비를 제작하고 '격막전해' 기술을 적용한 습식제련 공정으로 불순물을 걸러낸다. 격막전해는 정광 없이도 아연·연 제련 부산물에서 안티모니를 추출, 전기에너지를 통해 금속 이온만 분리·석출하는 방식이다. 불순물은 최소화되고 순도는 99.9%까지 끌어올려진다. 기존 전해법보다 10배 이상 높은 순도다. 고려아연은 이를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도 밟고 있다. 지난해 11월 '격막전해 공정을 활용한 안티모니 메탈 제조 기술'을 산업통상자원부에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지금은 숙련 인력의 손이 절대적이다. 황 파트장은 "내년이면 주조 공정 자동화 비중을 한층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양광·AI 반도체發 '은빛 인듐 르네상스'
14일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직원이 인듐을 주조하고 있다./영상=강민경 기자
차로 5분쯤 떨어진 곳에는 인듐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도꼭지처럼 뻗은 노즐에서 은빛 액체가 흘러나오자, 직원 한 명이 이를 받아 여섯 개 몰드에 일정량씩 채워 넣었다. 넘치는 부분은 납작한 막대기로 매끄럽게 정리됐다. 은괴처럼 빛나는 인듐은 몰드 안에서 순식간에 굳어가며 형태를 갖췄다. 겉보기엔 붕어빵을 굽듯 단순해 보였지만, 일정한 두께와 순도를 맞추기 위해선 손끝 감각이 중요했다. 전종빈 전자소재팀 책임은 "미세한 온도나 무게 차이에도 품질이 달라진다"며 "정밀한 작업이 곧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가 들고 있던 인듐 괴는 5㎏ 남짓, 시세로 개당 250만원을 웃돌았다. 전 책임은 "아연 정광이나 2차 원료 속 인듐을 모아 용매 추출 공정을 거친 뒤 기름층에서 인듐을 분리·농축한다"며 "이후 전기분해로 불순물을 제거해 괴 형태로 주조한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서 생산된 인듐 괴./사진=강민경 기자
아직은 비교적 소량 생산 단계라 완전한 자동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숙련된 작업자가 무게를 맞추고 표면을 정제한 뒤 냉각과 진공 포장 과정을 거쳐 출하된다. "예전엔 한 달에 열흘 남짓 돌렸지만 요즘은 20일 이상 가동합니다. 올해 목표는 150톤이에요." 지난해(92톤)보다 약 60% 늘어난 수준이다. 국내에서 인듐·비스무트·텔루륨 등 세 가지 핵심소재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곳은 고려아연이 유일하다. 특히 인듐은 세계 주요 제련소 중에서도 고려아연의 생산량이 가장 많다. 인듐은 평판디스플레이와 터치스크린에 들어가는 ITO(인듐주석산화물)의 핵심 소재다.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꿔주는 투명 전도막으로 쓰인다. 한때 LCD TV 판매 부진으로 가격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 태양광 박막 셀과 AI 반도체, 5G 통신 부품 등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전 세계 인듐 시장의 약 11%, 미국 공급망의 30%를 담당한다. 김승현 온산제련소장은 "원래 부산물로 생산하던 안티모니가 미·중 갈등 이후 회사의 '효자 종목'이 됐다"며 "안티모니 뿐 아니라 인듐·텔루륨·게르마늄 등 전략금속이 주력 비철금속 못지 않게 회사의 미래 가치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국 의회 및 정부 관계자들이 제련소를 방문할 때마다 '(전략광물을)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는지, 언제부터 가능한지' 질문을 쏟아내곤 한다"며 "당사는 50년 제련 기술의 축적 위에 이제 자원 안보의 한 축을 세우는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