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에서 생성형 동영상 인공지능 소라2를 내놓은지 3주쯤 됐네요. 저는 작년에 소라1이 나오자마자 써보고 너무 실망했습니다. (그렇게 난리치더니, 장난도 아니고) 소라 2는 홍보용 영상만 봤는데 나아 저소득 적금 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해보이네요. 그런데도 오픈AI를 위시한 인공지능 업체들은 지금 당장 누구나 즉시 바로 맘대로 AI 동영상을 만들어서 감독 데뷔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지요. 일부 언론 기사 중에서도 AI의 능력이 이미 어마무지한 것처럼 써놓은 것들도 있더군요. 물론 AI가 미래의 방향인 것은 맞지만,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인양 과 현대저축은행 추가대출 장해서 말하는 일부 마케팅에 속진 마세요. 영화, 특히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는 수준의 상업 영화에 적용 가능한 AI는 아직 수련이 꽤 필요해보이니까요.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이번 레터의 주인공인 영화 ‘중간계’를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중간계’는 제목처럼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힌 인물들이 저승사자에 쫓기는 할부이자계산 추격 액션극이에요. 필리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 그를 쫓는 국정원 블랙요원(변요한), 형사(김강우), 또 다른 필리핀 어둠의 세력(이무생) 등이 나오고요. ‘중간계’는 매우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어요. 인물은 배우가 연기하고, 컴퓨터그래픽이 필요한 부분만 AI를 썼습니다. 작년에 나온 ‘나야, 문희’는 배우 나문희씨의 허락을 받고 AI가 생성한 나문희씨 이미지에게 연기를 맡겼는데, 너무 어색해서 실험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웠습니다. AI 기술이 사람을 구현하기에는 아직 힘이 많이 부쳐요. 동물은 좀 덜합니다. ‘중간계’의 십이지신 저승사자는 AI가 만들었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대규모 폭발이나 붕괴 장면도 AI가 했는데, 제법. 전체적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중간계’는 작년 ‘나야, 문희’나 ‘엠호텔’보단 훨씬 진일보했습니다. 이 정도면 조만간 AI가 어지간한건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워낙 발전 속도가 빠르니까요. 물론 티는 납니다. 혹시 AI영화를 한 번도 안 보셨다면 “아니 요즘 AI가 세상 씹어먹는다더니 이 정도밖에 안 돼?”라거나 “이게 최선이야?”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AI 마케팅에 너무 현혹돼온 것일수도) 특히 대규모 액션 장면은 기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정도 수준도 ‘중간계’니까 가능한 거랍니다. ‘중간계’의 AI연출이 AI영화로 널리 알려진 ‘원 모어 펌킨’의 권한슬 감독이거든요. 저도 이번에 강 감독님과 권 감독님 인터뷰하면서 알았는데, 실제 배우와 AI 배우의 인터렉티브한 연기를 구현하기가 현재로선 매우 어렵다고 하네요. AI끼리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중간계’에 AI 저승사자와 AI해태의 격렬한 전투신이 들어가 있어요. 수많은 생성 영상들에서 초당 단위로 장면을 따와서 이어붙이는 장인 정신을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인형눈붙이기죠. 권 감독님 말로는 0.2초씩 갖다붙였다고 하시던데, AI가 생성한 이미지 중 무엇을 어디다 어떻게 써야할지를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겠지요. 그래서 제가 AI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고 위에 말씀드린 거고요.
영화 '중간계'의 한 장면입니다. 저 연등, 저거 진짜 연등이에요.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측의 허가를 받아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저승사자 이미지는 AI가 만들었고요. 시커먼 녀석들이라 사람보단 확실히 어색함이 덜합니다./CJ CGV
제 생각엔 ‘중간계’의 모델이 적어도 당분간은 상업영화에서 적용 가능한 AI 활용법의 현실적인 절충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기는 배우가 하되, CG 대신 최신 버전 AI를 반영하는 거죠. 여기서 점점 발전하면 AI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겠지만요. 아, ‘중간계’는 전체 이야기 중 절반만 보여드립니다. 그래서 러닝타임도 60분인 것이고, 관람료도 절반 수준인 8000원이에요. AI도 AI지만, 이야기가 중간에 끊어진다는 부분이 사실 좀 더 직접적으로 흥행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하다 마는 거, 관객이 워낙 싫어하니까요. ‘외계인’ 경우에서 보셨지요. 다행히 ‘중간계’ 마지막 장면이 뒷이야기를 매우 궁금하게 만드는 엔딩이긴 해요. ‘범죄도시’ ‘카지노’ ‘파인: 촌뜨기들’ 만든 강 감독님의 절단 신공이 느껴졌습니다. 강 감독님이 후반부 이야기를 담을 2편 시나리오도 다 써놓으셨다고 하는데, 2편이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한국 영화가 AI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강 감독님이나 권 감독님처럼 앞장서는 영화인들의 꾸준한 도전은 꼭 필요하니까요. 물론 뒷받침하는 투자도요. 요즘처럼 어려운 영화 시장에서 ‘중간계’의 도전이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길 응원하며,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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