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유엔기념공원 일대 경관지구 높이제한 완화는 ‘묘역이 내려다보여선 안 된다’를 조건으로 유엔 각국 동의를 얻은 것으로 드러나 향후 높이 기준이 계획보다 낮아질 여지가 있다는 평이 나온다. 가뜩이나 큰 틀의 개발 계획 없이 성지(聖地) 주변을 바꾸려고 해 우려가 나오는데, 완화도 일대를 개선할 자본 유입에는 힘을 쓰지 못할 것으로 보여 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남구 유엔기념공원 일대 전경. 이원준 기자
11일 남구 등에 따르면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위 원회(CUNMCK)가 조건부로 동의한 공원 일대 경관지구 건물 높이제한(현 12m) 완화 기준은 각각 24m와 33m다. 자연경관지구인 유엔묘지지구가 24m, 특화경관지구 용당지구 전체와 대연지구 일부가 각각 24m(8층)와 33m(11층)다. 공원 일대의 용도를 바꾸려면 위원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위원회 조건의 핵심은 ‘묘역을 내려다보 면 안 된다’이다. 낮은 자세에서 참전 용사를 맞이해야 하는데,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이들을 아래로 두게 돼 존엄성을 해친다는 뜻이다. 남구가 2022년 경관지구 해제에 나설 무렵부터 꾸준히 제기된 우려이자 위원회 동의가 늦어진 이유다. 위원회는 설득 3년 만인 지난달 27일 높이 완화에 일단 동의했다. 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묘역이 보이지 않는 높이’에 대한 위원회 판단이 바뀔 수 있어서다. 애초 완화를 추진해 온 남구는 지난해 12월 시에 세 곳 공히 30m로 완화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후 높낮이 등을 고려해 현 기준안을 짰다. 시는 묘역 존엄성을 해치는 유흥주점 등이 생기지 못하도록 하고, 키 높은 나무를 조성해 묘역 노출을 줄일 방침이다. 그러나 다소 높은 지대 에 자리한 용당지구 등이 여전히 고민이다. 이곳에선 24m 건물에서 묘역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니 현 계획안보다 높이를 더 낮추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다. 이러면 외부자본이 투자에 나설 유인이 떨어진다. 아파트·상업시설 재개발 등 대규모 사업 대신 노후주택 정비나 저층 개발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또 현재로선 개발 방향 도 수립되지 않았다. ‘종묘 재개발 논란’처럼 신성한 공간 일대를 개발하려는 시도 자체가 염려를 낳을 가능성이 큰데, 구체적 관리 계획에 관한 용역은 내년 상반기에나 발주될 예정이다. 전문가는 개발계획을 먼저 수립한 뒤 제한을 풀어야 했다고 본다. 부산대 정주철(도시공학과) 교수는 “부산에 몇 안 되는 공원 주변을 개발하는 것인데, 높이 제한을 일단 먼저 푼 뒤 개발계획을 세운다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계획을 먼저 세웠어야 하는데, 이게 거꾸로 되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지역이 바뀔지 짐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원 특성을 살린 공적 개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덕민 인도 명예영사는 “주변에 세계 22개 참전국의 전통·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문화원 거리’를 조성하거나, 참전국 간 문화예술·축제·경제·교육 등을 교류하는 ‘유엔 밸리’ 사업 등이 추진돼왔으나 경관지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제한이 완화되려는 만큼 이런 사업이 본격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 admin@slotmeg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