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앞두고 지난 50여 년간 걸어온 시조의 길을 총망라하는 평생의 숙원을 이루었노라고 밝히는 시조시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건네받은 책은 '이우걸 시조 전집'(태학사, 600쪽, 4만 원) 개정 증보판, 경남을 넘어 한국 시조 문단에 자신만의 시조 세계를 구축한 이우걸(78) 시인이 지난 2013년 발간한 동명의 시조 전집에 이어 12년 만에 새롭게 간행한 책이다.
여느 시조집, 시집 은 물론 웬만한 소설이나 수필집보다 두툼한 600쪽 분량의 책에는 그가 지난 반세기 걸어온 시조 인생이 묵직하게 녹아있다.
한 사람 또는 같은 시대·종류의 저작을 한데 모아 한 질로 출판한 책을 뜻하는 전집을 작가 본인이 직접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세계문학전집 같은 형태로 접할 수 있고,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엮은 경우라면 김기림(1908~?)·조지훈(1920~1968)·김춘수(1922~2004) 등 교과서에서 마주하는 유명 문인 사후 출판사나 연구자, 추모위원회 등이 발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시인은 "작가 개인이 전집을 낸 사례는 경남에서 본 적이 없다. 전국 단위로나 종종 접할 뿐"이라며 "자신의 생을 걸고 글을 써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보통은 마음에 드는 작품만 고른 '선집'을 낸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진주 한 카페에서 이우걸 시인이 평생의 숙원이었 던 시조 전집 발간 소회를 밝히며 미소 짓고 있다. 백지영기자
이번 전집에는 지난 1977년 그의 첫 시집 '지금은 누군가 와서'를 시작으로 반세기 동안 그가 발간한 시조집 10권을 비롯해 해설, 연보 등을 묶었다. 12년 전 일흔의 나이로 낸 전집과 비 교하면, 그 후 간행한 3권의 시조집을 더하고 앞서 교정 오류나 퇴고 부족으로 고민했던 일부 작품을 수정해 담은 개정 증보판이다.
그가 다시금 전집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에서는 그냥 선집을 발간하는 게 어떻겠냐고 숱하게 권유해 왔다. 하지만 이 시인은 전집을 고집했다.
"마음에 안 드는 시는 좀 빼지 않았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첫 시조집부터 마지막 시조집까지 발간 순서대로 시조 약 500편을 전부 다 실었습니다.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해도 내 자식이지 않겠어요. 차별 없이 모든 시조를 싣되, 초기 시조집에 담겼던 몇 편의 자유시는 '시조 전집'이라는 이름에 맞게 제외했습니다."
그가 문학에 뜻을 굳힌 건 경북대 사회교육과에서 역사를 전공하던 시절이다. 경북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시인 김춘수가 이 시인이 학보에 발표한 작품을 보고 격려해 오면서부터다.
유명 시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자유시를 배우기도 잠시, 그는 자유시가 아닌 시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우리 민족 천년의 전통이 어린 시조를 개발하지 않은 채 자유시만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유시는 일본으로 유학 간 사람들이 일본에서 영향받아 쓴 거라 전통이 없었거든요. 당시는 시조를 쓰는 사람이 200명도 되지 않았던 시절인데, 나라도 시조를 고집해 현대시의 차원으로 올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인은 지난 50년간 시조 특유의 정형성에 소재·주제와 표현 방식의 현대성을 더한 현대 시조의 길을 구축해 왔다. 시 비평과 달리, 이전까지는 찾아보기 힘들던 시조 비평을 활성화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그 역시 시조 비평에 나서는 것은 물론 내로라하는 비평가들을 시조 비평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이번 시조 전집과 함께 발간된 '이우걸 시조 깊이 읽기'(태학사, 유성호 엮음, 3만 원)에서는 김경복 외 비평가 15명이 이우걸의 시조 미학을 총체적으로 분석·평가한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시인은 이번 전집이 지역 연구자들이 자신처럼 고전으로 남을 지역 문인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평생의 숙원을 이뤘으니 "이제는 더는 안 내겠다"고 다짐하듯 말하는 그에게 "사람 마음 또 모르는 거 아니겠냐"고 답하자 너털웃음이 따라왔다. 전집 마지막 장 너머, 그가 새롭게 일궈갈 시조 여정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