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19일 유튜버 '꾸준(kkujun)'이 올린 '울릉도는 원래 이런 곳인가요?? 처음 갔는데 많이 당황스럽네요;;' 영상 썸네일. 사진=유튜브 '꾸준'
울릉도가 언론의 표적이 됐다. 여행 유튜버 '꾸준'이 올린 울릉도 탐방기 영상이 발단이었다. 그는 울릉도 한 식당에 방문했다. 1만5000원짜리 삼겹살 2인분을 시켰다. 잠시 후 나온 돼지고기 두 덩이는 각각 비계가 절반을 덮고 있었다. 의아해 하는 손님에게 종업원은 “구워 드시면 맛있다”고 답했다. 유튜버는 학자금대출 중도상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그 영상을 보고 황당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 댓글창에서도 분노가 느껴졌다.
시청자는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이다. 영상 조회 수가 이틀 만에 100만 회를 넘겼다. 언론이 달려들었다. 기사는 죄다 판박이었다. 대부분 유튜브 영상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쳤다. 유튜버 꾸준의 소신 마이너스통장 발급조건 발언과, 분노로 가득한 댓글 반응은 따옴표를 친 문장으로 옮겨졌다. 물론 '보고 읽은 것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객관의 외피는 썼다. 실상은 취재 없는 받아쓰기였다. 울릉도 관광 실태를 취재를 한 사람은 유튜버 꾸준 한 명뿐이었다. 언론은 그 취재기를 보고 감상문을 써서 배포했다. “울릉도의 바가지 문제가 심각한 건 맞지 않느냐”고 반문할 러시앤캐시 무상담100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글에서 짚고 싶은 것은 그 주장의 맞고 틀림이 아니다. 문제는 언론의 게으른 보도 방식이다. 그 게으름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언론은 '울릉도의 바가지가 심각하다'는 결론을 세워놓고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를 유튜버의 경험담과 댓글 여론에서 끌어왔다. 그 과정에서 기초적인 사실 확인도 반론 청취도 하지 않았다. 언론은 직장인주5일제 유튜브 영상을 하나의 지표로 삼아 울릉도의 물가와 서비스 실태, 바가지 논란의 진위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렇게 검증한 뒤에야 '울릉도의 바가지가 심각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유튜버의 경험과 풍문, 댓글 여론을 보고 아마도 바가지가 심각한 게 확실한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확신이 진실처럼 보이게 포장했다. 그럴 법하다 쌍용자동차 60주년 는 인상을 '객관의 탈'을 씌워서 보도하는 순간 언론은 비판자가 아니라 여론 증폭기가 된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에는 <여객선도 끊겼다… '바가지 논란' 울릉도 “이러다 다 죽겠다”'>(머니투데이)라는 제목이 등장했다. 기사를 읽어보면 여객선이 끊긴 이유는 복잡다단하다. 하지만 제목만 보면 '바가지 여파로 관광객 급감 → 여객선 중단' 이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이 스스로 만든 논란에 다시 올라타 서사를 확장한 셈이다. 사실 애초에 '비계 삼겹살'이 아니면 지방의 교통문제는 기삿거리도 안 됐을테다. 울릉도 주민들의 오래된 교통권 문제는 '바가지 때문에 망하는 섬' 서사로 덮였다. 최근 며칠 사이에는 <“울릉도 2박 3일에 1인 100만 원… 중국 세 번 다녀올 돈”>과 같은 기사가 눈에 띄었다. 출처는 울릉군청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이다. 10월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 동안 20개 언론사가 관련 기사를 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들이 같은 날 몇건의 기사를 썼을까 살펴봤다. 매일경제 33건, 한국경제 27건, 머니S 22건, 인사이트 23건, 문화일보 16건 순이었다. 과연 취재할 여건이 될까. 울릉군수는 연일 쏟아지는 언론 보도와 들끓는 여론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언론에서 '비계 삼겹살'로 지칭한 돼지고기를 판 식당에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 소식을 언론은 또 <“농락하더니 꼴 좋다”… 비계 삼겹살 판매한 식당, 결국>(서울경제)과 같은 기사로 알렸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언론이 내놓을 만한 변명이다. 과장을 보태자면 언론은 '사실에 부합할 것 같은' 여론에 베팅했다.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쉽게 여론에 올라탈 수 있었던 이유는, 공격 대상이 '언론에 대항할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곳'이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특정 대기업이나 저명인사였다면 최소한의 사실 확인과 반론 절차가 따랐을 것이다. 지방 소도시라서, 그곳에 사는 평범한 식당 상인이라서, 그래서 언론은 더 손쉽게 취재 없이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 그런데 만약 언론의 취재 없는 확신과 베팅이 삐끗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받아쓰기'는 '전원 구조' 세월호 보도 참사 사례와 구조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울릉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이 얼마나 손쉽게 '그럴 것 같은 이야기'를 사실로 확정해서 배포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이번에는 울릉도였지만, 다음엔 또 다른 지역, 또 다른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언론은 삐끗할 때 늘 같은 말로 스스로를 변호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전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