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침팬지보다 조금 더 지적인 원숭이에 불과하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가장 파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 현대 동물 행동학의 지평을 열고, 이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꾼 세계적 동물학자 제인 구달(91) 박사가 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다. 구달 박사가 설립한 제인 구달 연구소(Jane Goodall Institute·JGI)는 이날 “구달 여사가 미국 월이자지급식 ELS 순회 강연 도중 자연적 요인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프랑스 르몽드 등은 “현대 과학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의 퇴장”이라며 그의 죽음을 일제히 전했다. 구달은 1960년부터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 숲으로 들어가 야생 침팬지의 생활사를 매일같이 관찰·기록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해 11월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 차량유지비지급규정 이름 붙인 수컷이 막대를 깎아 개미를 낚는 장면을 관찰해 ‘침팬지도 도구를 만들고 쓴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이는 인간만을 ‘도구 만드는 존재’로 규정하던 통념을 뒤집는 대발견이었다. 이후 미국 과학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대서특필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의 곰베 연구는 지금도 야생동물을 대상으로 한 최장기 관찰 연구로 꼽히고 있다. 3000천만원 그의 연구 방법론은 당시 학계의 주류와 달랐다. 각각의 개체에 번호 대신 플로·피피 같은 이름을 붙이고, 이들의 감정과 개체 성격을 기술했다는 이유로 ‘의인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장기간 축적된 영상과 기록은 침팬지의 사냥, 연대, 애도, 권력 다툼 같은 복잡한 사회 행동을 보여주었고, 현대 동물 행동학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 만기일시상환비율 가가 뒤따랐다.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발견은 ‘동물은 본능적 존재’이고, 인간은 이성적 존재란 오만을 허물었다”고 평했다.
세계적 동물 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2005년 8월 호주 시드니 타롱가 동물원에서 유리창 너머로 침팬지 무리를 관찰하고 있다. 구달은 당시 “야생 침팬 미소금융 햇살론 지 개체 수가 10년 새 75%나 줄어 25만 마리만 남았다”고 경고하며 보전 활동에 나섰다. /로이터 연합뉴스
구달은 1970년대 후반 현장 과학자에서 자연 보호·환경 운동가로 변신했다. 1977년 JGI를 세워 곰베의 연구를 지키는 한편, 아프리카 지역사회와 함께 침팬지 등의 서식지 보호 사업을 확장했다. 1991년엔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고, 지역 환경 보호에 나서는 청년 운동인 ‘루츠 앤 슈츠(Roots & Shoots·뿌리와 새싹)’를 출범시켜 전 세계 학교·지역 단체로 확산시켰다. 로이터는 “서식지 파괴를 목격한 충격이 과학자 구달을 행동가로 바꿨다”고 평했다. 이후 국제적 명예도 잇따랐다. 2002년 유엔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됐고, 2021년엔 인류 정신과 가치의 진보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영국 템플턴상, 올해 1월에는 미국 최고 민간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과학과 자연 보전을 통해 인류의 가치와 평화를 증진시켰다”는 평가가 따랐다. 구달은 ‘희망’의 사상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희망의 이유: 한 영적 여정’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해야 행동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고령에도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간 수백 일에 달하는 강연 일정을 소화했다. 타임지는 그를 “조용하지만 단호한 희망의 전도사”로 묘사했다. 신종 코로나 시기엔 온라인 강연과 팟캐스트로 젊은 Z세대와 접점을 넓혔다. 그는 1934년 영국 런던에서 영국 육군 장교 출신의 사업가 아버지와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남부의 해변 휴양 도시 본머스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동물에 큰 관심을 보였고, 특히 침팬지를 좋아했다. 구달의 어머니는 이런 딸을 항상 칭찬하고 응원해줬다. 침팬지와의 인연은 아버지가 선물한 침팬지 인형 ‘주빌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형은 구달이 평생 소중히 여긴 ‘애착 인형’이었고, 지금도 JGI에 전시되어 있다.
제인 구달 박사(오른쪽)가 1974년 남편이자 동물 사진가였던 휴고 반 로위크(뒤, 카메라 촬영 중)와 함께한 모습. 평생 침팬지 야생 연구와 환경 운동에 헌신한 구달은 10월 1일 미국에서 별세했다. /AP 연합뉴스
구달을 침팬지 연구로 이끈 것은 영국의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였다. 호모 하빌리스 등 초기 인류의 화석을 동아프리카에서 발견,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밝혀낸 현대 인류학의 거두다. 리키 박사는 1957년 아프리카에서 비서 일을 하던 구달을 우연히 만나 그의 뛰어난 관찰력에 매료됐고, 아무런 학위도 없는 그를 발탁해 곰베의 침팬지 연구를 맡겼다. 이 연구가 큰 성과를 내면서 구달은 1966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구달은 1964년 네덜란드 출신 야생 사진가 휴고 반 로위크와 결혼해 외아들 휴고 에릭 루이스를 뒀다. 그러나 연구 활동과 생활 방식 차이로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며 1974년 이혼했다. 아들은 어린 시절 곰베에서 침팬지와 어울려 지냈고, 이를 남편이 못마땅해했다는 얘기도 있다. 구달은 1975년 탄자니아 국립공원 국장 데릭 브라이슨과 재혼했으나 1980년 사별했다. 생전 그는 “자연 속에서 슬픔을 건너는 법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영국 가디언은 구달을 “자연계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대변자”라고 했다. 르몽드는 “침팬지를 통해 인간을 다시 보게 만든 선구자”라고 썼다. 구달은 자연계 내에서 인간과 동물의 존재적 위치와 가치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분법을 깼다. 그 씨앗은 동물 서식지 복원, 인수공통감염병 시대의 인간-야생동물 접경 관리, 청년 주도 기후 운동 등에 영향을 미치며 과학의 언어와 도덕의 언어가 서로 만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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