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1324년 7월 18일 맘루크 왕조가 지배하던 이집트 카이로에서 휘황찬란한 행차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빨간 바탕에 노란 상징을 새긴 휘장을 앞세운 말리제국의 왕 만사 무사 일행이 입성한 것이다. 만사 무사를 수행한 인원은 6만명에 이르렀고, 낙타와 말에는 금이 18t가량 실려 있었다고 한다. 만사 무사가 사원에 기증하고 관직에 있는 이들에게 나눠준 금의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이 지역의 금 가격이 이후 10년 넘도록 12∼25% 급락했다고 책 '본 인 블랙니스(저자 하워드 워링 프 회생절차폐지 렌치)'는 전한다. 만사 무사가 다스린 말리제국은 당시 세네갈강과 감비아강, 나이저강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백성과 봉신이 5천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을 받아들여 무슬림이 된 만사 무사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해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면서 이집트를 들렀고, 그곳에서 석 달을 체류하며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모기지론이런 역사적 사례는 14세기의 말리제국이 얼마나 강성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말리제국에 훨씬 앞서 젠네제노(고대 젠네)가 기원전 250년에 들어섰다. 이곳은 진흙 벽돌로 쌓아 올린 젠네 모스크로 유명하다.
중세 아랍인들에게 '황금의 나라'로 처음 알려진 곳은 가나제국(현재의 가나보다 북서쪽인 말리 지역에 자리 잡았다)이다. 8세기 이전에 성립된 가나제국은 사하라사막 북쪽 베르베르인들과 사막횡단 무역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나제국은 금을 아파트 청약 1순위 수출하고 소금과 직물 등을 수입했다. 가나제국에 이어 말리제국이 무너진 15세기 서아프리카에는 이슬람제국인 송가이가 수도인 가오를 기반으로 새로운 통치권을 확립했으나 100여년 뒤인 1591년 사하라사막을 건너 침범해온 모로코의 베르베르족에게 패배하면서 무너졌다. 서아프리카에서 이런 역사가 쓰이고 있던 그 무렵 남부 아 개인회생신청방법 프리카에는 다른 문명이 발전했다. 쇼나족이 11세기에 세운 짐바브웨 왕국은 16세기까지 존속하며 모잠비크와 동부 아프리카 해안까지 뻗어나갔다. 이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그레이트 짐바브웨' 궁성이 있다. 거대한 돌담으로 이뤄진 이 궁성은 쇼나족이 정교한 건축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짐바브웨는 쇼나어로 '왕의 궁정'이라는 뜻이다.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해오던 아프리카는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맞은 유럽인들의 진출과 노예무역, 식민 지배로 이어지는 길고 긴 시련기를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