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 관계를 "평화적 두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과거 동서독이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점차 관계를 발전시켜 통일된 독일로 거듭났듯, 남북한 역시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대화와 교류를 재개해야 한다는 취지다. 할슈타인 원칙 폐기, 동서독 기본조약, 보이텔스바흐 협약 등은 정 장관이 줄곧 주목해 온 키워드다.
통일부는 정 장관이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4일까지 독일·벨기에 방문을 적금 이율 계산 마치고 귀국한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순방에서 정 장관은 '제35회 독일 통일의 날' 기념 행사와 '2025 국제 한반도포럼(GKF)' 독일 세미나에 참석하고 독일 및 유럽연합(EU) 주요 인사·전문가들을 두루 만났다. '독일 통일의 날' 기념식에서 장 장관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안케 레링어 연방상원의장, 엘리자베스 카이저 연방총리실 청년사업대출 동독특임관 등 독일 의회·정부 인사들을 만나 독일 통일 35주년을 축하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에 대한 독일측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정 장관은 "과거 동서독이 '상호 인정'의 정책 전환을 토대로 양독 관계의 발전을 달성했던 사례는 현재 한반도의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에서 남북 간 적대적 현실을 이자폭탄 극복하고, 평화를 향한 현상 변경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과거 노태우 정부 시절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 관계를 서로 다른 두 국가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정의해왔다. 이는 현 이재명 정부의 기조이기도 하다. 그 창업진흥원ci 러나 정 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론'을 수 차례 언급하며 "잠정적으로 통일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관계 속에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통일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통일부 장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독일의 교훈을 언급한 바 있다.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된 수수료 면제 후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시기인 지난 6월에는 기자들과 만나 "1969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정권이 들어섰을 때 먼저 취한 조치가 '할슈타인 원칙'의 폐기"라고 말했다. 할슈타인 원칙은 동독의 국가성을 부인하고, 또 동독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와 수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브란트 정권이 이 원칙을 폐기하면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어 1972년에는 국경 불가침을 확인하고 국제무대에서 각자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됐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한다는 데 적잖은 논란이 있음에도 정 장관이 꾸준히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는 이유는 그만큼 남북 관계 회복의 필요성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우리 분단사에서 남북 교류와 대화가 7년 간 막힌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이라며 “하루 속히 대화를 복원하고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학자연맹(FAS) 등 전문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90% 이상 고농축 우라늄 보유량은 2000㎏ 정도로 추정되며, 하루가 지나는 만큼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시급한 중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1976년 만들어진 보이텔스바흐 협약도 정 장관이 즐겨 인용하는 독일 통일의 교훈이다. 이는 당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서독 정치교육학자들이 올바른 정치교육을 위해 채택한 일종의 수업지침이다. 강압적·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논쟁성을 유지하며 정치적 행위 능력을 강화하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담긴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의 모델로도 제시된 바 있다. 이번 유럽 방문에서도 정 장관은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을 방문해 보이텔스바흐 협약 등 독일의 정치교육 사례를 독일측 전문가들과 논의했다. 정 장관은 “독일의 경험은 통일과 이후 사회통합을 위한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연방정치교육센터는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포용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시민 참여를 촉진하는 교육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모범 사례”라며 “한국의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도 이러한 방향을 참고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북한이 시험발사한 신형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다만 이러한 모델이 언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지난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정의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김정은 북한 최고위원장이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밝히는 등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훨씬 고도화된 핵능력을 갖춘 데다 러시아와의 군사·경제적 밀착, 또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바탕으로 미국과도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2000년대와는 다른 구조이기 때문에 북한은 한국이 전혀 필요치 않은 상황”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가 담긴 END 이니셔티브 역시 햇볕정책과 똑같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도 남북 교류 재개가 당초 예상보다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 장관은 GKF 기조 연설에서는 "동서독이 걸었던 화해와 협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는 '평화적 두 국가'와 '교류, 관계정상화, 비핵화(END 이니셔티브)'를 통해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을 위한 변화를 결단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독일에서 보도 라멜로 하원 부의장, 귄터 자우터 연방총리실 외교안보보좌관, 노베르트 람머트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이사장 등을 면담하고 벨기에에서는 EU 의회 한반도 관계 대표단, 올로프 스쿡 EU 대외관계청 정무 사무차장을 면담했다. 이밖에 정 장관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아들인 페터 브란트·임상범 주독일 대사 등과 함께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브란트 전 총리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유주희 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