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출범을 앞두고 대규모 채용에 나서면서, 승무원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합격 스펙'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공식적인 기준은 없지만, 키와 몸무게가 암묵적인 잣대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 승무원 학원 합격자 스펙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 합격자 중 최고 신장은 171cm, 최대 몸무게는 53kg이었다. 평균 신장과 체중은 165cm, 50kg으로 BMI 기준 저체중에 해당한다. 누리꾼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며 "체중이 스펙에 포함된다는 게 기괴하다"고 비판했다. ◇면접장에선 모두투자분석가 마른 체형…"다이어트 멈출 수 없다"
출처=온라인커뮤니티
한경닷컴 취재 결과 실제로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키에서 115~118을 뺀 값이 적정 체중'이라는 계산식이 통용된다. 키가 170이라면 5올쌈바 3~55kg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기자가 승무원 준비 카페에 "170cm에 60kg이면 합격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답변은 "다이어트는 필수"였다. "52~53kg은 돼야 경쟁력이 있다", "50kg 중반까지 빼야 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현직 승무원도 "170에 60kg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살을 빼야 한다"고 단언했다. 4년제 미대체리마스터 비법 를 졸업한 승무원 준비생 A씨(23)는 "처음 학원에 갔을 때 165cm에 52kg이었는데, 48~49kg까지 빼라고 지시받았다"며 "저체중인 걸 알면서도 면접장에선 모두 마른 체형이라 다이어트를 멈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승준생들 사이에 퍼진 체중 압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브이로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준비생들은 체중계 수치와 식단을 공유하며 "오늘 0.5kg 감량했다"는 기록을 콘텐츠화한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 B씨(27)는 "입사 당시 170cm에 50kg이고 지금도 이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며 "키빼무료인터넷바다이야기 몸 115가 넘는 체중으로 들어온 동기는 없었다"고 귀띔했다. 채널A '하트시그널4'에 출연한 방송인 김지영 씨 역시 본인의 유튜브에서 "승무원 준비 시절 점심 한 끼만 먹고 저녁은 거르며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토익·학원비·수영학원까지…총비용 500만원 돌파 체중뿐 아니라 최근에는 영상 면접이 또 다른 장벽으로 떠올랐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티웨이·에어부산·진에어 등도 영상 면접을 도입하면서, 승무원 준비생들은 "실무 면접장에 오르기도 힘들어졌다"고 푸념한다. 대한항공은 공고문에서 "밝고 조용한 실내에서 촬영"만 안내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전문 샵 메이크업과 보정 영상이 사실상 필수처럼 여겨진다. 한 준비생은 "스튜디오를 빌리지 않으면 불안하다. 조명·보정까지 해주기 때문에 결국 비싼 곳을 찾게 된다"고 했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 항공과 출신 C씨(26)는 "룸 대여 2~3만 원, 스튜디오 촬영 5만 원, 헤어·메이크업만 10만~20만 원, 면접복까지 합치면 몇십만 원이 기본"이라며 "아르바이트나 부모 지원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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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준비 중인 D씨(23)도 "메이크업과 공간 대여만 80~90만 원, 토익과 학원비까지 합치면 500만 원을 훌쩍 넘는다"며 "대한항공은 수영테스트도 있어 수영학원 등록비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영상 면접은 첫인상이 모든 걸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취업박람회에서는 '과한 메이크업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진한 화장과 스튜디오 촬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만 검색해도 '승무원 영상면접 전용 메이크업'을 홍보하는 샵이 적지 않다. 준비생들은 보통 15만~20만 원이 넘는 고가 메이크업을 받으며, 좌우 반전 고정·색감 보정 서비스를 내세운 스튜디오 역시 성업 중이며. 1~2분짜리 영상 촬영에 수십만 원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합격 몸무게 없어 인재상·서비스 역량이 우선"…항공사의 공식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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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해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문이 전부다. 특정 학교 출신만 합격한다거나, 키·몸무게에 제한을 둔다는 건 모두 낭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객실 승무원은 안전요원이자 서비스 담당 직군이다. 고객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는 이미지라면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회사 인재상과 서비스 역량이 더 중요하다"며 "유명 항공사 중 한 곳은 지원자 자소서를 모두 꼼꼼히 읽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영상면접과 관련해서도 "항공사가 지출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헤어·메이크업 업체들이 과도한 광고로 준비생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영상 면접은 수많은 지원자를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한 절차 간소화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한 승무원 학원 강사는 "유니폼을 입고 고객 앞에 서는 직업 특성상 체중 감량을 권할 수밖에 없다"며 "강제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자발적 강요에 가깝다"고 털어놨다. 일부 학원은 아예 키·몸무게 측정 장비를 두고 '감량 후 합격 사례'를 홍보에 활용한다. 멘탈 관리·체중 관리까지 묶어 패키지 상품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한 승무원 면접 컨설턴트는 본인의 SNS에 "168cm에 59kg 학생이 떨어졌을 때 의아했지만, 사실상 그 체중으로 지원한 게 문제였다"며 "극심한 다이어트 끝에 52~53kg까지 줄이고 나서야 합격했다"고 말했다. ◇전문가 "늘 웃고 단정해야…승무원은 한국 사회가 만든 여성상 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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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항공사와 준비생 간의 괴리가 '역할 분리'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항공사가 공식적으로 외모 기준을 두지 않는다 해도, 사회적 기대와 학원·업체의 상업적 강조가 맞물리면서 준비생들은 외모 관리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항공 승무원은 안전요원이자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서비스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에게 과도한 외적 기준을 요구한다"며 "항공사는 '기준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 합격자들의 외모가 암묵적 기준처럼 작동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유럽 등 선진국 항공사에서는 다양한 나이와 체형의 승무원이 안전요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지만, 한국에서는 항상 미소를 짓고 단정하며 매끈한 이미지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여성 승무원에게 외적 매력을 사실상 합격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항공사의 이미지와 사회적 기대가 누적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소재 취업컨설턴트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채용 과정을 단순화하고 객관적 역량 중심으로 운영한다면 시장의 왜곡도 줄어들 것"이라며 "외부 업체에 의해 불안이 증폭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