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공개된 작품 <새벽의 모든>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후 1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로카르노 국 즉석복권 당첨 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라 더 의미가 클 것 같은데, 부산을 찾는 소감이 어떤지. “무엇보다 로카르노 이후로 부산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를 하게 되어 기쁘다. 심은경 배우와 함께하기 때문에 그녀의 나라인 한국에서 이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만남, GV 등이 많이 잡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 파이낸싱 는데 이런 일들이 내게, 그리고 나의 창작과정에 매우 좋은 자극이 된다.” ▷ 아무래도 평론가들을 포함, 한국 언론의 가장 큰 관심사, 심은경 배우와의 협업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심은경 배우를 어떤 배우라고 생각했으며 이번 작업을 같이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다면. “심은경 배우가 출연한 대표작들이 이미 연체정보 다 봤었고, 예전부터 좋아했다. 그런 그녀가 처음에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놀랐고, 나와도 언젠가 함께하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었다. 막상 심은경 배우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놀랐던 점은 실제의 그녀가,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들과 매우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매우 진솔하고, (영화 속 캐릭터 보다)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이번에 작품을 함께 하며 발견한 또 다른 지점은 그녀의 유머감각이다. 항상 대기실에서 이야기할 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 심은경 배우의 한국어 대사 부분, 독백의 내용이 매우 좋았다. 문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한국어 전문가가 따로 쓴 것인가. “물론 각본은 내가 일본어로 썼지만, 심은경 배우가 읽고 직접 한국어 번역 초벌 작업을 했다. 나중에 스태프들과 함께 심은경 배우와 어울리는 표현과 단어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 <여행과 나날>은 알려진대로 츠게 요시하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 궁금하다. 츠게 요시하루는 일본의 만화라는 분야, 혹은 스토리 문학이라는 분야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인물인가. “과연 전설적인 만화가다. 프랑스에서는 그를 만화계의 누벨바그를 상징하는 인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그러니까 작화나 이야기에 있어서 전혀 다른 접근, 그리고 독창적인 표현법을 쓰는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이번 영화의 원작이 거의 50년 전에 쓰인 작품인데도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면모가 있지 않나. 스토리 안에서 나오는 인물들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나 예술가 등 굉장히 전위적인 캐릭터들이 중심이 되거나 등장한다.” ▷ <여행과 나날>은 각기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접점을 통해 이어지는 혹은 동시에 분절된 구조를 통해 보여진다. 두 개의 이야기가 매우 달라서 흥미로웠다. 앞에 이야기는 (심은경 캐릭터) ‘이’가 만든 이야기 세상, 뒤에 이야기는 이가 실제로 겪는 세상이다. 연출적으로도 앞의 여름 파트는 극중 인물 ‘이’가 만들고 연출한 것처럼 느낌과 스타일이 뒤의 겨울 이야기와 매우 다르다. 감독님의 연출 방식, 혹은 접근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한 것인지. “아시다시피 이야기의 배경은 각각 여름과 겨울이다. 인간의 몸 자체가 여름과 겨울에 다르게 반응하지 않나. 배우들이 계절이라는 특성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가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연출할 때 구상했던 지점이었다. 여름편에서는 모든 것이 (바다, 자연으로 인해) 감각적으로 열리는 느낌의 연출을, 겨울편에서는 여름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공간 안에 있는 ‘이’의 내면에 더 집중하는 방식의 연출을 했다. 작은 현미경으로 보는 큰 세상이랄까.” ▷ 궁극적으로는 매우 색다른 형태의 두 가지 여행을 그리는 영화다. 극 중에서 심은경 배우가 여행이란 말로부터 도망가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 다른 두 캐릭터는 여행이 꼭 신나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여행이란 어떤 것인가. “여행과 영화는 비슷하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최대한 ‘말’로부터 멀어지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의 때가 묻어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정작 내가 그 단어를 쓸 때면 내가 느꼈던 것과 그것을 (단어를 통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관념은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익숙한 말이나 룰이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내겐 영화이고, 여행이다.” ▷ 여행을 자주 가시는지 (웃음). “(웃음) 요샌 일 때문에 많이 못 갔다. 대신 지금 사는 곳이 좀 떨어진 외곽이라 산과 바다에 둘러싸여서 꽤 만족하며 산다 (웃음).” ▷ 개인적으로는 겨울 이야기 속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이 매우 좋았다. 특히 여관의 주인인 벤조 역할을 맡은 츠츠미 신이치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인데 국내에는 다른 일본 배우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듯하다. 감독님이 직접 배우 홍보를 한다면 (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포함해서 많은 작품을 하는 배우이기도 해서 그를 모르는 일본인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배우다. 그럼에도 정작 그는 본인을 ‘연극배우’로 인식하고 그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일 년에 한 번씩 꼭 연극무대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번에도 공연 스케줄이 아니었다면 한국에 같이 왔을 것이다.” ▷ 겨울 파트에서는 배우들 입에서 계속 입김이 나오더라 (웃음). 촬영이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얼마나 깊은 산이었으며 몇 회차 정도 촬영했는지. “‘야마가타’라는 지역에 있는 산이고 보신대로 엄청나게 깊은 산인데다가 엄청나게 추웠던 것도 사실이다 (웃음). 5주 정도의 촬영이었는데, 그럼에도 매우 즐거운 촬영이었다.”
▷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촬영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초기 영화에서 주로 쓰던 아카데미 비율 (1.37: 1)을 쓰고 있는 영화다. 사실 박스 형태로 보이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고, 도전적인 화면 비율이다. “나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비율이다. 애초에 영화라는 매체가 창조되고 아카데미 비율이 오랜 시간 동안 쓰이지 않았나. 내겐 비율의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임 사이즈고, 나의 작품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비율이다.” ▷ 한국에서 남은 일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번 방문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은? 가령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내일 부국제에서 기자회견이 있다. 사실 영화제로 온 방문이라 다른 영화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홍보 일정 때문에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다 (웃음).” ▷ 부산이 아직 더워서 가능하다! 내일이라도 가셔서 하시라! (모두 웃음) “노력해보겠다 (웃음). 음식으로는 추어탕을 가장 좋아한다.” ▷ 추어탕은 생각지도 못한 음식이다 (모두 웃음). “그런가?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더라. 일본에서도 ‘도죠’라고 해서 미꾸라지를 먹기는 하는데 흔한 식재료는 아니다.” ▷ 한국에 추어탕 드시러 자주 오시면 좋겠다. 물론 멋진 영화와 함께 말이다.
“꼭 그러고 싶고, 그럴 것이다 (웃음).”
의 감독 미야케 쇼 / 사진. 한경DB"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4/ked/20250924172656029kavg.jpg" data-org-width="1000" dmcf-mid="V9iRG68tW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4/ked/20250924172656029kavg.jpg" width="658">
영화 <여행과 나날>의 감독 미야케 쇼 / 사진. 한경DB
미야케 쇼 감독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신중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심은경 배우와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영화 로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매우 상기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마도 지극히 내성적인 그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행복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자신의 영화와 똑 닮은 사람, 그 영화가 가진 엄청난 가치와 평가만큼이나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 미야케 쇼가 추어탕을 먹으러 한국에 또 오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