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정부가 대미 투자금액 3500억 달러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안도의 이면 = 지난 7월 30일,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미국이 예고한 관세 교사주5일제 부과일(8월 1일)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죠. 시장은 성공적인 협상이 었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미국이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면서도 쌀과 소고기 시장을 지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7월 3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농축산물 부분 논의는전혀 없고 합의된 바도 없다"며 "농축수산물이 가진 정 100만원즉시대출 치적 민감성과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감안해 추가 개방을 막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몇가지 의문점이 남아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논란거리는 우리나라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87조원)를 어떤 방식으로 투입하느냐입니다. 한국 정부가 약속한 3500억 달러는 우리나라 GDP(2023년 기준) 1조7 3년거치17년 130억 달러의 20.4%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이기 때문이죠. 한국 정부는 '펀드'를 조성해 35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시장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투자처와 시기, 투자금 회수방법, 수익 배분 구조 등 명확한 게 없었기 때문이죠.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1500억 달러의 '조선 협 한국신용평가사 력 전용 펀드'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투자금액은 2000억 달러라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2000억 달러도 대부분 대출과 보증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용범 실장의 말을 들어볼까요? "직접투자 비중은 매우 낮을 것이다. 2000억 달러 역시 한도 개념으로 보고 있다." 곳곳에서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부는 이 우리은행 전세자금대출 서류 처럼 "협상이 잘 마무리됐다"는 말만 반복했죠. 정작 미국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미 무역협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밝혔습니다. 러트닉 장관은 7월 30일 X(옛 트위터)에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에 투자할 수 있도록 3500억 달러를 제공할 것"이라며 "투자 수익의 90%는 미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자처와 수익 배분을 두고 한미 양국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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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日 무역협상이란 전철 =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탓일까요? 한미 무역협상 타결 소식이 알려진 지 한달 넘게 흘렀지만 양국이 상호관세 협상에 사인을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후속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쟁점은 앞서 언급한 '3500억 달러'의 투자방식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일본식 '백지수표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이 자신들이 원하는 곳,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투자해 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요구 조건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한 미일 무역합의 관련 행정명령에 있습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합의를 공식적으로 이행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죠. 미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에 따르면,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는 5000억 달러의 투자처는 미국 정부가 선정합니다. 원금을 회수하기 전까진 수익을 50 대 50으로 나누고, 그 이후엔 미국이 수익의 90%를 가져갑니다. 미국은 이를 한미 무역협상의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러트릭 장관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계약서에 서명했다. 한국은 무역 협상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9월 11일 CNBC 인터뷰)." # 3500억 달러의 규모 =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4162억9000만 달러·8월 기준)의 84.0%에 달할 정도니까요. 이런 막대한 자금을 미국의 입맛대로 투자하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과도한 외화유출은 한국 경제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게 뻔하니까요. 허준영 서강대(경제학부) 교수는 "3500억 달러를 트럼프 대통령 남은 임기 3년 동안 투자하려면 1년에 1000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고 조달할 수 있는 달러는 연간 200억~30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허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조달하는 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외화 유출이 원·달러 환율을 불안하게 만들고, 통화위기를 일으키는 리스크로도 작용할 수 있다." # 요원한 한미 통화스와프 =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7월 30일부터 2021년 말까지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던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2009년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일본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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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3500억 달러가 한국을 빠져나가면, 달러 부족 현상이 가속화할지 모릅니다.[※참고: 한미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0월~2009년 4월(300억 달러 규모)과 2020년 두차례 체결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통화스와프는 말 그대로 거래 당사자끼리 '돈'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행에서 달러가 급하게 필요할 때 원화를 담보로 주고 다른 나라의 달러를 빌려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미 양국 간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돼 있으면, 우리나라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로부터 직접 달러를 빌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건데, 우리에겐 그 틀마저 없는 셈입니다. 미국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자'는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미국에 투자하느니… = 이 때문인지,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것보다 25%의 관세를 내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대외경제연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한미 관세 협의의 경제적 타당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5%의 관세를 부과할 때 줄어드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0.3~0.4%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 GDP가 2292조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연간 7조~9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금 3500억 달러(약 487조원)를 철회한다면, 실질 GDP 감소분을 최소 54년에서 최대 69년간 충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시장에서 "차라리 25%의 상호관세를 내는 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오는 배경입니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됩니다. 딘 베이커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11일 '일본과 한국은 돈을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자국의 수출업자들에게 줘야 한다'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액은 약 1320억 달러였다. 15%의 관세로 대미 수출은 1250억 달러로 줄어들고, 25%의 관세를 적용하면 추가적으로 감소하는 대미 수출은 125억 달러가 된다. 트럼프는 한국에 125억 달러의 수출을 보호하려면 3500억 달러를 내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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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 정부가 한미 무역협상을 파기하고, '독자노선'을 구축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이미 미국과 무역협상을 체결했기 때문이죠. 한국이 무역협상을 파기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에서 소외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무역협상 파기를 빌미로 어떤 통상 압박에 나설지도 예단하기 힘듭니다. 무작정 한미 무역협상을 파기하는 건 되레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 李의 선택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한미 무역협상을 두고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며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실은 14일에도 "국익을 우선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며 "'국익 최선'이 이뤄지는 지점에 다다르면 국민께 알려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말은 이해하지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당장 미국 시장서 일본차의 관세율은 15%이지만, 한국차는 25%입니다. 트럼프발 관세 압박은 시작됐고, 우린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의 압박을 이겨내고 합리적인 협상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