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가 시대 악기 연주단체인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지휘하고 있다. (c)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공연장에 가면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 등 현악기 연주자들이 지판을 짚은 손가락을 열심히 흔드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음의 높이를 재빠르게 높였다 낮춰다 하여 비브라토(떨림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지속되는 음에 변화를 줘서 소리를 화려하고 풍성하게 하는 주법인데, 악보에 따로 표시된 건 아니다. 지난 7월 작고한 영국 지휘자 로저 노링턴(1934~2025)은 ‘비브라토 킬러’로 불렸다. 비브라토 주법을 ‘현대의 마약’으로 치부하며 극도로 배척해서 얻은 별명이다.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당시엔 비브라토 주법을 쓰지황금성사이트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노링턴은 작곡 당시의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는 ‘역사주의 연주’(또는 고음악, 시대 악기 연주)를 주도한 지휘자 가운데 한명이다. 그가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2010년 발매한 말러 교향곡 9번 음반이 비브라토 논쟁에 불을 붙였다. 현악기의 비브라토 사용을 철저히 배제한 연주였다.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소리란 찬사와 건실시간차트주식방송 조하고 뻣뻣하며 밍밍하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비브라토는 현악기에서 음의 떨림을 만들어내는 주법이다. (c)violinmasterclass.com
‘반비브라토 진영’의 선봉에 선 노링턴은 “비브라토가 할리우드 영화음악릴게임강시 과 대중음악에 영향받아 만들어진 20세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말러가 활동했던 당시만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비브라토를 남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악단이 음악에 비브라토를 바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어요. 음식에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노링턴은 2007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내가 죽는 날, 세상이 비금호타이어주식 브라토 없이 돌아간다면 기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세상을 떴어도 비브라토 없는 세상이 도래한 건 아니다. 다만, 비브라토에 대한 그의 원칙론적인 접근이 연주 지평을 넓힌 건 분명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인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노링턴 덕분에 비브라토 없는 말러 교향곡의 참신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음악에 대해 새롭고 흥미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말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했다. 비브라토 제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현악 연주자들은 비브라토 주법을 기본으로 훈련받는다. 비브라토를 없애려면 기본기를 고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연주자들에게 비브라토는 불안정한 음정을 감추는 ‘은신처’ 구실도 한다. 최은규 평론가는 “비브라토를 쓰지 않으면 음 하나하나를 아주 정확하게 연주해야 한다. 비브라토를 전면 금지하면 연주자들이 적잖이 괴로울 것”이라고 했다. 귀가 비브라토에 익숙해진 청중 역시 비브라토가 없으면 싱겁고 맹숭맹숭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식품 첨가제에 맛을 들이면 쉽게 끊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은 비브라토를 음악적 맥락과 작곡가 의도에 맞춰 적절하게 섞어 쓰는 ‘절충주의 연주’도 중요한 흐름이다. 벨기에 태생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78)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비브라토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며 “비브라토를 완전히 배제하기보다 절제된 사용을 장려하는 편”이라고 했다. “비브라토를 모든 연주에 항상 적용하지 말고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자는 겁니다. 바흐 자신도 교조주의자가 아니었는데, 우리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정신과 의사 출신인 헤레베허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이끌고 내한해 서울예술의전당(18일)과 대전예술의전당(19일), 아트센터인천(20일)에서 바흐 ‘b단조 미사’를 연주한다.
비브라토 주법을 극도로 배척한 영국 지휘자 로저 노링턴이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비브라토만큼이나 치열한 논점은 작곡 당시의 옛 악기를 쓰느냐, 아니면 현대 악기로 연주하느냐다. 역사주의 연주 단체들은 현악기에서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을 쓴다. 호른과 트럼펫 등 금관악기에도 밸브가 없다. 목관악기 구조도 훨씬 단순하다. 이런 옛날 악기를 써야 작곡가의 의도를 살리고 작품에 충실한 연주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헤레베허는 서면 인터뷰에서 시대 악기로 바흐를 연주하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옛 음악에 대한 향수나 순수주의 문제가 아니라,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옛 악기들은 더욱 투명하고 따뜻하며 명료함을 제공하죠. 음악은 덜 거대하고 더 친밀하며 영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호흡합니다. 이를 통해 바흐의 목소리가 ‘더 크게’가 아니라 ‘더 진실되게’ 전달되는 겁니다.” 역사주의 연주의 선구자인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는 “박물관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라며 “그것이 오늘날 옛 음악을 생기 있고 가치에 합당한 형태로 재현하는 단 하나의 옳은 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7월 작고한 영국 지휘자 로저 노링턴은 소리에 떨림을 주는 비브라토 주법을 극도로 배척했다. (c)Ken Hively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음량이 풍부하고 음정도 안정적인 현대 악기야말로 작곡가의 의도를 더욱 다채롭고 자유롭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83)이 ‘반역사주의 연주’의 선봉에 섰다. 그는 역사주의 연주를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2006년 비비시(BBC) 강연에선 “우리는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아니다”라며 “음악의 목표는 옛날 소리의 재현이 아니라 작곡가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파악해 지금 시대의 살아 있는 예술로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2011년 가디언 인터뷰에서는 “베토벤이 오늘날의 피아노를 봤다면 그 표현력에 열광했을 것”이라고 했다. 악기 선택에서도 절충주의가 있다. 지난 5일 국립심포니와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야 물로바(66)는 금속 현과 거트현을 바꿔가며 양쪽 스타일을 섞어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8)가 이끄는 아폴론 앙상블은 현대 현악기를 바로크식 주법으로 연주한다. 이들은 지난달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이런 방식의 연주를 선보였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는 역사주의 연주 단체이지만 종종 현대 악기로도 연주한다. 옛 연주법에 현대 악기의 풍부한 음량을 결합해 새로운 해석을 선보인다는 취지다. 고전음악 연주도 다양한 논쟁과 실험을 통해 끝없이 변화하며 새로워지고 있다. 이준형 음악평론가는 지난해 펴낸 저서 ‘옛 음악 새 연주’에서 “옛 음악을 향한 관심과 탐구는 회고적인 재현이나 복원이 아니라 지극히 현대적이고 창조적인 예술 행위”라고 썼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