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베이징 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설마 했는데, 실제로 아버지의 중국행에 동행했습니다. 기차역에서 딱 한 번만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지만 김주애의 첫 외교 무대 등장입니다. 많은 언론들은 그가 북한 권력 승계 구도의 ‘선두 주자’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주애가 베이징에 도착한지 하루 뒤인 4일 노 아이패드 인터넷 동신문은 돌연 “우리 국가의 고유한 특징은 혁명 위업의 계승 문제를 완벽하게 실현한, 계승성이 확고한 전도양양한 나라라는 것”이라는 뜬금없는 자랑도 했습니다. 1면엔 김정은과 김주애가 의전을 받는 사진을 싣고, 2면엔 전승절과 무관하게 “우리 공화국은 사소한 편향이나 우여곡절도 없이 계승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해 왔다. 우리나라에선 일찍 대보험 부터 혁명의 대를 잇는 것을 만년지계의 국가 대사로 내세우고 이 사업에 많은 품을 들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1면과 2면을 보면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후계자가 김주애인가”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편집입니다. 그렇다면 올해 12세밖에 되지 않는 이 소녀의 현 위치는 과연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할까요. 동아타이어
2022년 11월 27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장에서 딸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김정은. 김주애의 얼굴은 이날 처음 공개됐다. 동아일보 DB
● 어린 딸을 내세우는 이유 김주애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 개인회생 인가결정 022년 11월 27일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호 발사 현장에 9세 딸의 손을 잡고 등장했습니다. 이때 북한 매체들은 그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이후 3년 동안 주애는 아버지 옆을 늘 지켰습니다. 현지 시찰 사진에 주애가 보이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 영어로 수업 은은 9세밖에 되지 않는 딸을 왜 공개했을까요. 주애의 공개 시점은 공교롭게도 김정은이 코로나에 걸려 심하게 앓고 난 직후였습니다. 2022년 8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토론 연설에서 “이 방역 전쟁의 나날 고열 속에 심히 앓으시면서도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인민들 생각으로 한 순간도 자리에 누우실 수 없었던 원수님”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오빠가 코로나19로 의심되는 고열을 앓았고, 이후 치료를 통해 회복했다는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김정은은 2023년 1월에도 코로나에 다시 걸려 사경을 헤맸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김정은은 신장 170㎝에 몸무게 140㎏나 나가는 비정상적인 체형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고혈압, 당뇨, 통풍 등 대표적인 비만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사람은 코로나에 걸렸을 때 정상인보다 사망할 위험성이 몇 배로 커집니다. 고열 속에서 꿍꿍 앓으며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내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김 씨 왕조는 어떻게 될까. 우리 가족은?’이라고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겁니다. 이는 ‘혹시 내가 죽어도 우리 집안을 지킬 후계자는 미리 만들어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험’이란 생각으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부친인 김정일, 할아버지 김일성이 모두 심혈관계 질병으로 유언을 남길 새도 없이 급사한 것을 봤습니다. 심장병이 가족력인데, 김정은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보다 훨씬 심혈관 질병에 취약한 체형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뒤 후계자부터 지정한 것은 아버지 김정일에게서 배운 것일 겁니다. 김정일은 2008년 8월 심각한 뇌졸중으로 쓰러져 3개월 가까이 거동을 못 했습니다. 그해 11월 다시 나타났을 때는 훌쩍 말라 있었고, 왼손과 왼발에 마비 증세가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겨우 살아나 ‘저승사자’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김정일은 복귀하자마자 후계자부터 지정했습니다. 두 달 뒤 북한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내렸다는 소식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이 공식 확인됐습니다. 실제론 김정일은 병상에서 의식을 회복한 뒤부터 후계자 지정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후계자가 당연히 물려받아야 할 것들이 꽤 있는데, 김정은에게는 비밀경찰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위부 통제권을 가장 먼저 물려주었습니다. 불만 세력부터 정리하라는 뜻이었겠죠. 이후 군권, 당권, 금고를 차례로 물려주었습니다. 김정일은 마침내 201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일에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나와 북한 인민에게 “내 후계자”라는 것을 확실히 인증시켰습니다.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난 지 3년 뒤 사망했습니다. 그 3년은 후계 구도를 만드느라 전념했던 기간이었고, 자기 할 일을 다 마치고 급사했습니다. 20대의 김정은이 집권 후 항간의 예상과 달리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한 것은 김정일이 이처럼 필사적으로 아들에게 튼튼한 기반을 닦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권력 물려주기 및 공식 인증’ 과정이 없이 김정일이 갑자기 죽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북한에선 후계 세습을 둘러싸고 내전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가령 북한의 실권자였던 장성택은 장남 김정남이 후계자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지도부는 김정은을, 또 어느 세력은 김정은의 형 김정철을 밀었을 겁니다. 저마다 “이것이 김정일의 뜻”이라고 주장했겠죠. 권력자가 확실하게 후계 구도를 정하지 않고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인류가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수도 없이 많이 봤습니다. 대개는 형제의 난이 벌어졌고, 왕국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김정은도 고열 속에서 이 문제를 고민했겠죠. 그래서 주애를 데리고 나와 북한 인민에게 “내게도 자식이 있고, 내가 죽으면 이 애가 권력을 물려받을 것”임을 각인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가 급사해도 권력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면 겨우 9세인 딸을 그렇게 급하게 노출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2010년 10월 10일 김일성광장에서 아들 김정은을 최초로 공개한 김정일.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스러운 눈빛이 역력하다. 동아일보 DB
● 김정은에겐 아들이 없을까?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생깁니다. 김정은에게 아들은 없는 것일까요. 김정은에게 2009~2010년 태어난 아들이 있다는 정보는 많았지만, 아직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들이 있다고 해도 2022년 이전에 사망했거나 외부에 노출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거나 등의 이유로 김주애가 후계자 순위에서 최선이었을 겁니다. 김주애에게 남동생이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2017년경 자식을 낳았다고 밝혔지만, 성별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2017년 태어난 아들이 있다면 이제 겨우 8세입니다. 김정은이 쓰러졌던 2022년엔 5세밖에 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어린아이를 후계자로 공개하기엔 무리였을 것입니다. 딸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도 부담이 매우 큰 일입니다. 주애가 다른 성 씨의 남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으면 김 씨 왕조가 사라지게 됩니다. 물론 다른 김 씨와 결혼해 김 씨 성의 아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혈통이 꼬이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김정은도 가능했다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을 겁니다. 김정은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설주가 아닌 다른 여성들에게서 얼마든지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자신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지금 김정은에겐 어머니가 다른 어린 아들이 여럿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너무 어려서 현재론 ‘유사시’를 대비한 후계자용으론 김주애를 대신할 수는 없겠죠. 아들이 20세 안팎으로 성장할 때까지 김정은이 무사히 살아있다면, 그때 가서 주애를 뒤로 물리고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이 후계자로 알았던 김주애가 새로 나타난 ‘세자’를 깍듯하게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후계자의 권위는 더 오르겠죠.
지난해 4월 한 공군 비행장에서 김정은과 함께 곡예비행을 참관하고 있는 딸 김주애. 동아일보 DB
● 김주애는 권력을 물려받을까. 물론 이 역시 위험 부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딸을 너무너무 사랑한다면 말이죠. 만약 어머니가 다른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면 주애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 후계자는 권력의 누수를 막기 위해 정통성을 갖고 있는데다 북한 주민들이 오랫동안 후계자로 알았던 주애를, 나아가 모친인 이설주까지 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 본인이 이복형 김정남을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독살한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후계자를 교체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손으로 딸을 죽이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주애에게 권력을 넘기거나, 가장 아끼는 자식임을 오래오래 과시함으로써 누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함부로 주애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은 또 본인의 경험을 통해 주애를 어려서부터 노출하는 것이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2010년 10월 새파랗게 젊은 25세 김정은이 등장하자 북한 주민들은 “어린 애가 알면 뭘 알겠냐”며 수군거렸습니다. 김정은은 실권을 잡고 있던 고모부 장성택이나 다른 고위 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앞에선 깍듯이 대하면서 뒤에선 무시하는 시선을 수없이 받았을 겁니다. 그때 받은 분노가 “내 후계자는 일찍 능력을 갖춘 인물임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면, 어린 주애를 데리고 나타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시점에서 주애가 후계자라고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진으론 수없이 등장했지만, 아직 북한 주민들에겐 그의 이름이 공개된 바도 없습니다. ‘존경하는 자제분’ ‘조선의 샛별’ 등으로만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20년 뒤에도 김정은이 무사히 숨을 쉬고 살고 있다면, 그때 가서 후계 구도에 대한 생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주애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기괴한 왕국’의 후계자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일생과 운명은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지 점점 궁금해집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