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가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후임을 뽑는 '포스트 이시바' 국면에 돌입하자 '계파 정치'가 다시 횡행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이 주요 선거에서 연전연패한 이유로 지목됐지만, 반성은커녕 당권 잡기에만 혈안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일본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 차기 총재에 도전하려는 인사들이 이미 해산된 옛 계파와 만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자민당 총재 사임 의사를 표명했고, 당 지도부에 차기 총재 선출 절차 개 소속대학미정 시를 요청했다. 자민당 총재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10월 4일 총재 선거 실시' 일정을 확정했다.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전날 옛 모테기파 의원들과 국회에서 회동해 선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모테기 전 간사장은 옛 모테기파를 이끈 수장으로, 자신을 지지하라며 옛 계파 소속 의원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신한은행 전세자금대출 서류 출마를 저울질하는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같은 날 자신이 간부로 활동한 옛 기시다파 의원들과 만났다. 옛 기시다파의 리더였던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는 국회에서 따로 만나 선거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유력 주자인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장관도 계파의 힘을 빌리려 한다. 그는 한때 당내 최대 계파이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끈 우체국 행복가득 옛 아베파의 지지를 받고자 한다. 최근에는 당내 유일한 계파인 아소파의 수장 아소 다로 전 총리와 만나 선거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케이신문은 "다카이치 전 장관은 주변 의원들에게 입후보 의향을 시사했고 이번 주 안에 출마 의사를 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시 미국 모기지 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민당 총재직 사임과 총리직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현재 공식적으로 자민당 내 계파는 아소파만 존재한다. 2023년 말 자민당 계파 일부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거둔 돈을 비자금으로 유용한 '계파 비자금 사법고시고사장 스캔들'이 터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자 당시 총재였던 기시다 총리가 지난해 1월 기시다파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가장 많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난 아베파를 비롯해 다른 계파도 동참했다. 아소파만 계파 해체를 거부했다. 그러나 총재 선거를 계기로 계파 정치가 부활한 꼴이 됐다. 계파 정치는 계파 간 합종연횡을 통해 모종의 거래를 하는 일본 정치의 고질병으로 지목된다. 비자금 스캔들 이후 실시된 중의원(하원), 도쿄도의회,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모두 패배한 것도 계파 정치나 아소 전 총리 등 '시대 착오적 원로'들이 지배하는 자민당 구태 정치에 대한 환멸이 큰 요인으로 꼽혔다. 이시바 총리의 사임을 이끈 것도 계파 정치였다. 옛 아베파 핵심 인사들이 '총리 퇴진론'을 키웠고, 아소 전 총리가 아소파 모임에서 퇴진론에 강하게 동조하자 당내에 이시바 사퇴 여론이 확산했다. 도쿄신문은 "일련의 움직임은 '계파와 결별한다'는 당 개혁 방침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구태의연한 모습이 유권자의 지지를 잃은 근본 원인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도쿄=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