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인문연구가 이병권 씨가 '극우'가 깨어나는 역사적 조건과 작동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해부합니다. '극우'라는 말의 낙인 효과나 단순한 도덕 비난을 넘는 치밀한 분석을 해 보려는 것입니다. 1편은 1945년 전후 국제질서와 인권 규범을 '현대의 기준선'으로 다시 세우며, 극우가 전근대의 잔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내부에서 규범을 비워내는 현대적 정치 형식임을 밝힙니다. 2편은 욕심·혐오·공포·굴욕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선택·증폭·결합되어 대중 동원과 비상 권력의 정당화로 이어지는지 미국과 한국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
릴짱릴게임 렴합니다. 극우를 도덕으로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의 통제와 제도적 안전장치를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다시 '작동'하게 만들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편집자 주).
사람들은 극우(極右, far-right)라는 표현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습니다.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전체주의, 파시즘, 인종주의, 반인권, 독재의 언어가 반복해서 이 범주
게임몰 와 결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우적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일수록, 자신들이 '극우'가 아니라 '보수'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주류의 언어로 호명하려 합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유럽에서도 극우 정당들은 낙인 효과를 희석하기 위해 당명과 이미지를 바꾸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성격을 재포장해 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Marine Le Pen
바다이야기릴게임 )이 이끄는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 2018년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극우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책임 있는 보수'로 자신을 리브랜딩하려는 전략을 공식화했습니다(가디언(The Guardian), 2018.06.01; 로이터(Reuters), 2018.06.01).
이들이
바다신2 다운로드 흔히 내세우는 표어는 '공정'과 '경쟁'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정의에는 무관심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가 시대적 과제의 해결을 통해 더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더 정확히는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다시 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정'은 공동체적 정의의 언어
야마토릴게임 가 아니라, 서열 경쟁을 정당화하는 기술적 언어로 전락합니다. 이 과정에서 약자와 소수자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에서 낙오한 결과"로 취급됩니다. 배제와 차별은 사회의 자연스러운 정리 과정처럼 말해지고, 불평등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실패로 환원됩니다. 여기에는 강자와 약자의 서열을 자연 질서로 환원하는 사회진화론적 직관이 깔려 있습니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로 상징되는 사회진화론의 언어가 오늘날 그대로 반복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도태는 자연이고 배제는 합리"라는 감각은 현대 극우 담론 속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됩니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배제의 논리는 인종적 경계와 결합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진짜 국민'의 범위를 백인 중심으로 재단하고, 그들의 과거만을 영광의 역사로 선언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때 폭력과 차별은 일탈이 아니라 '원래의 질서'를 회복하는 행위로 미화됩니다. 법과 절차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무력화해도 되는 장애물로 취급됩니다. 자신들의 목표를 가로막는 규범은 "비정상"이 되고, 규범을 허무는 행위는 "정상 회복"으로 바뀝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소수 극단주의자의 일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무한 경쟁의 윤리, 시장의 승자독식 구조, 그리고 그 구조 위에서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는 올리가르키적 지배 양식은, 사회를 서열화하고 인간을 성과로만 평가하는 상식을 키워 왔습니다. 극우는 이 상식을 정치의 언어로 더 노골적으로 번역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극우는 전근대의 잔재가 아니라, 근대와 현대가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규범을 내부에서 비워내는 현대적 정치 형식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극우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묻기 전에, '무엇이 기준이었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극우의 언어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설득력을 얻는지를 이해하려면, 전후 세계가 합의해 온 기준선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 기준선이 가장 집약적으로 제도화된 해가 바로 1945년입니다.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라이히스타크) 앞에서 극우 세력에 반대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대규모 시민 시위 장면.-출처: 알자지라(Al Jazeera, 2024.02.03)
■ 왜 우리는 1945년을 '현대의 시작'이라 부르는가
1945년은 단순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가 아닙니다. 이 해를 현대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인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끝에 전쟁과 폭력을 더 이상 정치의 정상적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집단적 결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양차대전은 대량살상무기의 등장을 통해, 국가 간 충돌이 더 이상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절멸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인식 위에서 전 세계는 주요 강대국뿐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 협의 기구를 구성합니다. 그것이 바로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의 출범이었습니다.
국제연합의 핵심 정신은 분명했습니다. 분쟁은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협의와 합의를 통해 조정한다는 원칙입니다. 전쟁은 더 이상 주권의 표현이 아니라, 가능한 한 억제되어야 할 비정상 상태로 규정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됩니다. 이 선언은 제국주의 시대가 남긴 위계적 세계관과의 결별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독립한 모든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표결권을 갖는 주체로 인정되었고, 개인은 인종·종교·성별·출신에 관계없이 보편적 인간 존엄의 주체로 규정되었습니다. 이 두 기준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민주주의와 인도주의가 더 이상 특정 문명의 가치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통 규범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후 80여 년 동안 이 규범은 수없이 위반되었습니다. 반인권적 폭력, 독재, 대량학살, 민주주의의 후퇴는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비극들이 국제전쟁의 정상 상태로 다시 승인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규범은 흔들렸지만, 폐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지금 정면으로 부정되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을 동원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를 강제로 연행했습니다(The New York Times, 2026.01.03; The Guardian, 2026.01.04).
미국은 과거에도 중남미와 중동에서 군사 개입을 해왔습니다. 1970년대 이후 남미에서 친미 독재 정권을 지원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전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성격이 다릅니다. 과거의 미국은 최소한 국제연합의 규범을 존중하는 형식은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라크 침공 당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수개월에 걸쳐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를 설득하려 했습니다(The Washington Post, 2002.10.15; BBC News, 2003.02.05). 그 명분이 허위였음은 이후 드러났지만, 적어도 미국은 국제 규범과 절차 자체를 노골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트럼프와 MAGA 세력은 이제 규범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쿠바와 니카라과를 거론하며 추가 군사 옵션을 시사했고,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해서도 통제권 재조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CNN, 2026.01.05; Reuters, 2026.01.06; Politico, 2026.01.07).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군사력을 사용해서라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도 쉽게 노출되지 않았던 노골적인 약육강식의 선언입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침공의 동기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자원을 미국의 통제 아래 두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The Wall Street Journal, 2026.01.04). 이는 단순한 자원 외교가 아니라, 지난 80여 년간 유지되어 온 전후 국제질서의 규범을 정면으로 허무는 행위입니다.
더 심각한 점은, 이 질서를 설계하고 주도했던 국가가 바로 미국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전후 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던 미국이, 자신의 이익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그 규범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범의 붕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극우 정치가 집권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 징후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 정책의 변화인가, 아니면 현대라는 시대 자체에 대한 정치적 부정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는, 오늘날 극우가 왜 민주주의 내부에서, 왜 합법적 정치의 외피를 두르고 등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 밀워키에서 열린 민주주의 수호 집회. 시민들이 선거·법치·권리를 강조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출처: 아칸소 애드보케이트(Arkansas Advocate, 2024.08, 일자 미상)
■ 근대(近代)란 무엇이었는가
― 연도가 아니라 구조의 전환
우리는 오늘날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를 단계별로 구분합니다. 흔히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를 선사시대로 나누고, 이후 사회의 조직 원리와 생산 방식, 정치 구조의 변화를 기준으로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사회, 근대 사회, 현대 사회 등으로 구분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 단계 구분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주로 서구 역사학 전통 속에서 형성된 분석의 틀입니다. 이른바 서구 역사학 전통이란, 역사를 단순한 왕조의 교체나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인간 인식의 변화 과정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흐름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역사주의 전통의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사회경제 구조를 중시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근대 합리성과 지배 구조를 분석한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그리고 장기 구조의 변화를 강조한 아날학파의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 등은 이러한 인식 전환을 대표합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역사를 단절과 전환의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각 역사 단계의 특징을 여기서 모두 열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극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사회가 무엇이었고 어떤 구조적 특징을 지녔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극우는 중세를 직접 복원하려는 정치가 아니라, 근대가 만들어 낸 정치·사회적 성취를 부정하고 되돌리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근대의 성격은 오늘날 극우를 이해하는 하나의 핵심 통로가 됩니다.
서구 역사학의 기준에서 근대는 대체로 17세기에서 19세기, 나아가 20세기 초 제국주의 단계까지를 포함하는 장기적 전환기로 이해됩니다. 이 시기는 단일 사건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계몽사상의 확산,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민족주의의 태동, 그리고 이 민족국가들이 세계체제로 확장되며 형성한 제국주의 단계가 서로 맞물리며 누적된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계몽사상은 인간을 신의 질서나 전통적 권위의 종속물이 아니라, 이성과 판단 능력을 지닌 자율적 존재로 재정의했습니다. 산업혁명은 생산 방식과 노동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사회를 신분 중심 질서에서 계층·계급 중심 구조로 전환시켰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변화들을 정치의 언어로 폭발시킨 사건이었고, 주권이 군주가 아니라 국민에게 귀속된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어 등장한 민족주의는 국민국가라는 정치 단위를 역사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으며, 제국주의는 이 국민국가들이 군사력·자본·식민 지배를 통해 세계를 재편한 근대의 확장 국면이었습니다.
근대는 특정한 연도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근대는 왕조의 교체나 기술의 발명으로 단번에 출현한 시대도 아닙니다. 근대란 정치와 사회, 그리고 인간이 역사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 구조적 전환이었습니다. 이 전환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 극우가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 또한 식별할 수 없습니다.
근대를 구성한 핵심은 네 가지 요소의 결합이었습니다. 첫째, 시민·권리·대표성의 등장입니다. 근대 이전의 인간은 통치의 대상이었지만, 근대 이후의 인간은 정치의 주체로 재정의됩니다. 권리는 은혜가 아니라 권리로 인식되었고, 통치는 신분이 아니라 대표를 통해 정당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었습니다.
둘째, 대중 정치의 출현입니다. 정치는 더 이상 소수 귀족이나 지배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선거, 여론, 집회, 정당이라는 새로운 정치 장치들이 등장하면서 정치는 공개적 경쟁과 설득의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조정의 대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국민국가의 형성입니다. 근대 국가는 혈연이나 종교가 아니라, 영토·법·시민권을 기반으로 구성됩니다. 국민국가는 내부적으로는 통합을, 외부적으로는 주권의 단위를 형성했습니다. 이 구조 속에서 국가는 단순한 지배 기구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도적으로 매개하는 장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넷째, 근대 국가 능력의 형성입니다. 관료제, 상비군, 조세 체계, 행정 시스템은 근대 국가를 가능하게 한 물적 토대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능력이 단순히 강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해 통제되는 권력으로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는 더 강해졌지만, 동시에 제한받아야 할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하나로 묶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근대는 제도 이전에 "역사는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탄생이었습니다. 혁명, 개혁, 진보, 발전이라는 정치 언어는 이 인식 위에서만 가능했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서를 설계하고 수정할 수 있는 주체로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극우는 이 네 가지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를 하나씩 비워내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근대의 성격을 이해하는 일은, 극우 정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필수 조건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근대는 단순한 '서구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근대는 인간이 폭력과 지배를 자연 질서로 받아들이는 사고에서 벗어나, 정치적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전환시킨 역사적 실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실험 위에서만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전후 국제질서라는 현대의 규범이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집니다. 극우는 이 근대의 무엇을 부정하려 하는가. 극우가 되돌리려는 것은 제도 하나, 정책 하나가 아닙니다. 극우가 공격하는 것은 "역사는 바뀔 수 있다"는 인식 그 자체입니다. 이 점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극우를 전근대의 잔재가 아니라 근대의 성취를 역이용하는 정치 형식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됩니다.
■ 직선적 역사관과 순환적 역사관
― 왜 근대의 시간 감각은 달랐는가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정치의 목적과 정당성, 변화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졌습니다. 근대를 가능하게 한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역사를 직선적으로 인식하는 시간 감각의 확산이었습니다. 서구 근대에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나아가는 비가역적 흐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 인식은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고대와 중세를 거치며 형성된 기독교적 종말론, 즉 역사가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는 시간관에 계몽주의가 결합하면서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진보의 시간 구조가 확립되었습니다. 이 직선적 역사관은 발전(progress), 개혁(reform), 혁명(revolution), 단절(break)이라는 정치적 개념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기존 질서는 존속해야 할 신성한 체계가 아니라, 깨뜨릴 수 있고 넘어설 수 있는 역사적 단계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는 바뀔 수 있으며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은 바로 이 시간 인식 위에서 성립했습니다.
이러한 시간 감각은 서구 정치 질서에 분명한 효과를 낳았습니다. 왕정은 영원한 질서가 아니라 역사적 단계가 되었고, 불평등은 자연 질서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며, 인간은 신분을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 권리를 확장해 나갈 시민 주체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시민혁명과 국민주권, 권리 담론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직선적 역사관이 낳은 정치적 귀결이었습니다. 서구 근대란 제도의 변화 이전에,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이었습니다.
반면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역사는 대체로 순환적 질서로 인식되었습니다. 왕조는 교체되었지만, 질서 자체가 진보한다고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흥망성쇠의 반복 속에서 이상은 미래에 있지 않았고, 과거의 모범, 즉 고대 성왕의 시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정치의 핵심 과제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데 있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유지·관리·조정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급진적 단절보다는 점진적 조정을, 권리의 급속한 확장보다는 역할과 의무의 안정을 중시하는 통치 합리성을 낳았습니다. 이는 정체나 후진성의 표현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합리성이었습니다. 다만 이 구조에서는 개인 권리의 급진적 보편화와 국민주권 개념, 미래를 향한 정치적 약속이 상대적으로 늦게 등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됩니다.
이 차이는 문명적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구의 직선적 역사관과 동아시아의 순환적 역사관은 각기 다른 사회 조건과 사상 전통 속에서 형성된 세계 인식의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19세기 이후 세계체제가 서구 중심의 근대 질서로 재편되면서, 이 서로 다른 시간 감각이 동일한 근대 정치 무대 위에 동시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로부터 이른바 '근대의 시차'가 발생합니다. 서구에서는 직선적 역사관이 시민혁명과 민주주의로 이어졌고, 위기 국면에서 극우가 등장했습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순환적 역사관 위에서 국가 중심 개혁과 압축 근대화가 진행되었으며, 시민적 주체 형성의 지체는 다른 형태의 극우 정치로 연결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일반화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 방식과 세계체제 편입 경로가 만들어낸 구조적 경향의 문제입니다.
이 긴장은 오늘날 극우 정치의 언어 속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극우는 미래를 설계하지 않습니다. 극우는 언제나 과거를 호출합니다. "되찾자", "다시 위대하게", "원래의 질서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직선적 역사관의 언어가 아니라, 순환적 역사관을 정치적으로 동원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 사회의 순환적 역사관은 변화의 한계를 인식하는 겸허함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오늘날 극우의 과거 회귀는 근대의 성취 위에서 과거를 선택적으로 편집하는 정치 기술입니다. 극우는 과거를 복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추출해 민주주의와 인권, 전후 규범을 무력화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 지점에서 극우는 전통주의가 아닙니다. 극우는 근대의 시간 감각을 부정하면서도, 근대가 만든 권력 장치와 대중 정치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모순적 정치 형식입니다. 바로 이 모순이 극우를 단순한 보수주의나 향수 정치와 구별짓는 핵심입니다.
■ 왜 극우는 민주주의 내부에서 태어나는가
― 느린 정치와 쉬운 해답의 충돌
극우는 언제나 민주주의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극우는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극우는 군사 쿠데타나 노골적인 독재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극우는 선거와 법, 다수결과 국민의 이름을 통해 민주주의 내부에서 성장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극우를 단순한 반민주적 일탈로 오해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느림에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합의의 정치이며 절차의 정치입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즉각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토론과 조정, 타협을 거쳐 결정을 내리는 체제입니다. 이 과정은 복잡하고 때로는 답답하며, 성과는 더디게 나타납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에게 인내와 학습, 그리고 책임을 요구합니다.
반면 극우는 속도를 제공합니다. 극우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적대 구도로 환원합니다. 경제 불안은 외부 집단의 탓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특정 소수의 음모로, 정치적 무능은 배신자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숙의와 책임의 과정은 불필요한 지연으로 규정되고, 강한 결단과 즉각적 실행이 미덕으로 제시됩니다. 이 지점에서 극우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용합니다. 민주주의가 충분한 시민 교육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의 절차가 형식만 남고 실질적 대표성을 상실할 때, 극우는 스스로를 '진짜 민의의 대변자'로 포장합니다. 극우는 민주주의를 폐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그것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중요한 점은, 극우가 민주주의의 제도를 즉각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극우는 선거를 활용하고, 사법 제도를 압박하며, 언론의 자유를 선택적으로 이용합니다. 법은 폐지되지 않지만 법의 정신은 비워집니다. 절차는 유지되지만, 절차가 보호하려 했던 소수와 권리는 점차 배제됩니다.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 존속하지만, 내용은 다른 것으로 대체됩니다.
여기서 극우의 핵심 전략이 드러납니다. 극우는 민주주의를 전복하지 않습니다. 극우는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비틀어 장악합니다. 다수결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 무기가 되고, 국민주권은 권력 집중의 정당화 논리가 됩니다. 민주주의의 언어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로 전도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점점 선택지를 잃습니다. 극우는 정치적 다양성을 혼란으로 규정하고, 반대 의견을 비국민적 행위로 낙인찍습니다. 비판은 토론의 일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취급됩니다. 민주주의가 전제한 시민적 신뢰와 공존의 규범은 충성 경쟁과 배제의 논리로 대체됩니다.
이때 민주주의의 붕괴는 폭력적 사건이 아니라, 시민의 무기력 속에서 조용히 진행됩니다. 결국 극우가 민주주의 내부에서 태어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한계까지 자유를 허용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유는 민주주의의 강점이지만, 동시에 취약점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를 상실할 때, 가장 쉽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집니다.
■ 오늘날 극우는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가
― 제도보다 깊은 것들
오늘날 극우가 파괴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나 과잉 반응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는 극우라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수행되는 정치적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파괴는 민주주의 제도 그 자체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진행됩니다. 오늘날 극우가 파괴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 그 자체만은 아닙니다. 의회는 여전히 존재하고, 선거는 계속 치러지며, 헌법도 형식적으로는 유지됩니다. 그러나 극우의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극우는 제도를 무너뜨리기보다, 제도가 작동하는 전제와 의미를 붕괴시킵니다. 이는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전제해 온 작동 조건에 대한 침식입니다.
첫째, 극우가 파괴하는 것은 미래라는 시간 감각입니다. 근대와 현대의 정치는 현재를 관리하는 체제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설계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민주주의는 느리지만,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집단적 학습의 과정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반면 극우는 미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극우의 정치에는 계획은 있어도 전망은 없고, 동원은 있어도 책임은 없습니다. 극우는 언제나 과거를 호출하며 "되찾자", "원래대로"라는 언어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 합니다. 이는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정치의 태도 자체의 붕괴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전제로 삼아 온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 여기서 무너집니다.
둘째, 극우는 전쟁과 폭력에 대한 금기를 허물고 있습니다. 1945년 이후 현대를 규정해 온 핵심 기준은, 무력과 침공이 정치적 선택지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합의였습니다. 물론 이 합의는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예외적 비극으로, 침공은 반드시 정당화되어야 할 사건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오늘날 극우 정치는 이 금기를 다시 협박의 언어, 거래의 수단으로 되돌립니다. 힘은 노골적으로 찬양되고, 폭력은 문제 해결의 빠른 방식으로 미화됩니다. 이는 국제질서의 일시적 불안이 아니라, 현대 문명을 지탱해 온 규범 자체에 대한 도전입니다.
셋째, 극우는 인권의 보편성을 해체합니다. 인권은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이었습니다. 국적, 인종, 종교, 성별을 넘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국제질서의 윤리적 기반이었습니다. 극우는 이 보편성을 "특권"이나 "과잉 보호"로 왜곡합니다. 권리는 조건부로 재정의되고, 시민은 서열화되며, 보호의 대상은 점점 축소됩니다. 인권은 더 이상 기본선이 아니라, 충성의 대가로 배분되는 보상이 됩니다. 이는 권리의 박탈이 아니라, 권리 개념 자체의 전환입니다.
넷째, 극우는 책임의 정치를 파괴합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비판받아야 하고, 실패는 설명되어야 합니다. 극우 정치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외부의 적, 내부의 배신자, 보이지 않는 음모로 전가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분노와 공포를 전달하는 매개로 전락합니다.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설명 없는 동원과 복종의 정치입니다. 이 또한 정책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윤리적 토대에 대한 침식입니다.
이 모든 파괴는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극우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피를 유지한 채, 그 안에 담긴 근대와 현대의 핵심 가치들을 비워내는 정치입니다. 극우는 법을 없애지 않고 법을 무력화하며, 선거를 폐지하지 않고 선거를 왜곡합니다. 자유를 금지하지 않고, 자유가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방치합니다. 민주주의는 존속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흐려집니다.
따라서 오늘날 극우의 위험은 과거 파시즘의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교묘하고, 더 합법적이며, 더 일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극우는 총칼보다 언어를, 쿠데타보다 선거를, 공포 정치보다 일상의 피로와 좌절을 활용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오늘날의 극우는 더 늦게 인식되고, 더 어렵게 대응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습니다. 극우를 역사 속 퇴장물로 되돌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제도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인간적·사회적 조건을 다시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은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극우 정치 확산에 반대하는 시민 집회 장면. 평화적 시위와 민주적 연대를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보인다.-출처: 그레이엄 미디어 그룹(Graham Media Group, 2024, 월·일자 미상)
■ 극우는 전근대의 귀환이 아니라, 현대의 정치 형식이다
이제 분명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극우라고 부르는 현상은 전근대의 잔재도, 야만이 우연히 되살아난 결과도 아닙니다. 극우는 오히려 근대와 현대가 어렵게 쌓아 올린 성취 위에서만 가능한 정치적 퇴행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대중 정치, 국제 규범이라는 근대·현대의 언어를 빌려 그것을 내부에서 무력화하는 정치 형식, 그것이 오늘날의 극우입니다. 1945년 이후 인류는 전쟁과 침공을 정치의 정상적 선택지에서 배제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계 질서의 기준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 기준은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부정되어서는 안 되는 공통의 규범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현대란 바로 이 규범을 전제로 성립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극우는 이 전제를 하나씩 되돌리고 있습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를 포기하고, 과거의 신화로 시간을 후퇴시킵니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금기를 다시 협박과 거래의 언어로 바꾸고, 인권의 보편성을 조건부 권리로 해체합니다. 책임의 정치를 부정하고, 분노와 혐오를 동원의 에너지로 전환합니다. 처음에 살펴본 '공정'과 '경쟁'의 언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를 내부에서 잠식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민주주의의 외부가 아니라 민주주의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극우는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복하겠다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와 공존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배제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는 비어 있는 민주주의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극우를 단순한 보수주의나 반동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극우는 근대의 제도와 기술, 대중 정치의 동원 방식을 적극 활용하면서, 근대가 전제한 시간 감각과 책임 윤리, 인권의 보편성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모순적 정치 형식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극우는 과거의 파시즘보다 더 교묘하고, 더 일상적이며, 더 위험합니다. 따라서 극우에 맞서는 과제는 단순한 제도 방어에 그칠 수 없습니다. 선거를 지키고 헌법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적 조건, 다시 말해 미래를 함께 상상할 수 있는 시간 감각,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윤리, 느린 절차를 견디는 시민적 인내가 함께 약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극우는 어떤 인간적 감정과 사회적 조건을 결합해 이렇게 강력하게 작동하는가. 왜 불안과 분노, 욕망과 굴욕은 특정한 방식으로 정치화되는가.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 정동의 결합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극우는 반복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만, 극우는 다시 한 번 역사 속 퇴장물로 되돌려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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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2026.01
Reuters, 2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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