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열(1929∼2021)은 1970년대부터 50년 동안 물방울을 그렸다. 많은 이들이 물방울의 의미를 물었다. '정화수' '눈물' '동자승 오줌'. 답은 때마다 달랐다. 김창열의 작품 세계를 시간 순으로 되짚으며 물방울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고 이후 최대 규모로 회화와 아카이브 등 120여 점을 한데 모았다.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김창열 회고전 중 서울8호선 1960년대에 그린 앵포르멜 작품 '제사' 연작 전시 부분. 연합뉴스
전시는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총 4장으로 구성됐다. '상흔'은 한국전쟁의 충격 속에서 '앵포르멜(비정형)' 작품을 그리던 초창기 작품을 소개한다. 1960년대까지 이어진 '제사' 연작은 총알 자국이나 탱크의 흔적처럼 전쟁 집매매대출 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화면에 메우는 행위이자 죽음에 대한 제의였다. 전쟁을 겪으며 많은 희생을 목격한 김창열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상'은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거치며 선보였던 추상적 조형 실험을 가리킨다. 이 시기에 그는 거친 질감을 버리고 매끈하되 둥글납작한 추상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를 '창자 그림'이라 불렀 금리 5% 다. 인간의 장기를 염두에 둔 형상은 점액질로 녹아내렸고, 마침내 물방울의 형태로 변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김창열 회고전 중 프랑스 파리의 마구간 작업실 형태로 구성된 공간.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전시된 김창열의 대표작 물방울 그림을 관객이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프랑스 전시 디자이너 아드리앙 가르데르가 디자인한 공간 '물방울'은 파리 외곽의 열악한 마구간에 있던 김창열의 작업실을 연출했다 씨티캐피탈 대출조건 . 물방울의 탄생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김창열은 난로 하나뿐인 마구간에서 수도사처럼 머물다 어느 날 아침 캔버스에 뿌린 물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듯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방울 회화를 내세워 1973년 파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대성공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이건 페르피냥역(프랑스의 기차역)보다 웅장하다"라고 평가했다. 달리가 페르피냥역을 '세상의 중심'으로 간주했던 점을 고려하면 극찬을 남긴 셈이다. 이후로 김창열의 물방울은 캔버스에서 신문지로, 천자문으로 위치를 바꿔 가며 등장한다. 조각과 설치, 사운드 작업으로 변주되기까지 했다. 물방울은 존재의 다양한 상태를 아우르는 상징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김창열 회고전에 전시된 '회귀 SNM93001'. 규모 7.8m에 이르는 대작이다. 연합뉴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연출한 김창열 회고전의 마지막 부분. 1965년작 '제사'(왼쪽)와 물방울을 그린 1990년작 '회귀'가 마주본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상흔을 뜻하는 1965년작 '제사'와 물방울을 그린 1990년작 '회귀'가 마주하며 전시는 끝난다. 물방울의 본질이 1960년대 상흔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한국전쟁과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살아남은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 보내는 애도의 의미를 담아 물방울을 그렸다는 해석을 담은 배치다. 김창열은 "나는 오랜 시간 물방울을 집착에 가까운 정신적 강박으로 그려 왔다"며 "내 모든 꿈, 고통, 불안의 소멸, 어떻게든 이를 그려낼 수 있기 (바란다)"고 적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서로만 남았던 195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출품작 '해바라기'와 뉴욕 시기의 회화 8점, 최초의 물방울 회화로 추정되는 1971년 그림 2점 등 미공개 31점이 나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동안 미흡했던 작가의 연구를 보완하고 공백으로 남아 있던 시기의 작품을 통해 김창열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