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교육의 가교.’ 곽안련(찰스 알렌 클락·1878~1961) 선교사의 삶을 압축하는 말이다. 그는 1902년 내한한 뒤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기까지 40년간 한국교회 현장에서 목회와 신학교육을 동시에 이끌었다. 제1세대 선교사의 뒤를 잇는 동시에 제2세대 선교사의 길을 닦은 곽 선교사는 국내 장로교회의 토대를 놓은 핵심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개혁주의연구소(소장 오덕교 목사)는 19일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 더글라스홀에서 ‘곽안련 선교사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저신용자근로자대출 날 세미나에는 신학자와 목회자, 교계 인사들이 참석해 곽 선교사의 목회와 신학사상을 공유했다. 박응규 아신대 역사신학 명예교수는 곽 선교사의 승동교회 목회 사역을 “성경 중심의 복음을 전하며 사회적 신분 차별을 무너뜨린 목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승동교회가 ‘백정교회’라 불릴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곽 선교사는 백정 신자들에게 직분을 은퇴자금 맡기며 교회 안에서의 평등을 실천했다”며 “이는 교회가 영적 공동체를 넘어 사회 질서 변혁의 현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곽 선교사는 한국 장로교 유일의 목회자 양성기관인 평양신학교 교수로도 헌신했다. 그는 1908년부터 41년까지 실천신학과 기독교교육을 가르쳤다. 박 교수는 “곽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거리의 걸인과 국민은행 주택자금대출 병자, 노동자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도록 지도했다”며 “신학교육을 실제 목회 현장과 긴밀히 연결한 살아 있는 신학을 실천했다”고 했다. 조진모 전 합동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곽 선교사의 ‘설교학’은 목적을 일관되게 영혼 구원에 뒀다”며 “그는 청중과 단절된 구파적 설교와 교리적 깊이가 결여된 신파적 설교 등 양극단을 넘어 권위, 적응, 목 저축은행주부대출 적이란 삼중 구조 속에서 회심과 변화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설교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강도첩경’ ‘목사지법’ ‘목회학’ 등 50여권을 집필하며 한국교회의 신학적 자산을 쌓아 올렸다 곽 선교사의 직분론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크다. ‘곽안련의 직분론’을 발제한 이신열 고신대 교수는 “곽 선교사는 조선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시 은행 직무 대에 목회자이자 신학자로 서면서 교회 직분을 권위나 특권의 상징이 아닌 공동체를 섬기는 책임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곽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곧 공동체의 짐을 함께 지는 일임을 가르쳤다”며 “직분자가 교회의 기득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희생과 헌신을 감당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일깨웠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오늘 한국교회가 직분 세습, 권력화, 직분의 과도한 특권화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며 “곽 선교사의 가르침은 교회 직분이 권위가 아닌 섬김의 직무라는 사실을 다시 환기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