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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기자]
▲ 널 보낼 용기_송지영 지음_푸른숲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 담담하
바다이야기무료머니 게 써내려 간 글은 한편의 소설처럼 읽었다. 제발 소설이길 바라면서.
ⓒ 정현주
한 아이를 만났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의 예쁜 여학생이었다. 친구 같은 부모와 듬직한 오빠가 있
야마토무료게임 는 아이, 이름은 '서진'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또래들과도 잘 어울리는 명랑한 성격, 춤도 좋아하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서진이는 1년 전, 스스로 세상에 작별을 고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내 인생은 네가 떠남과 동시에 끝났다
자살은 누군가의 약함 때문이 아니
릴게임몰메가 다.
더는 붙들 것도, 기다릴 것도 남지 않은 끝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널 보낼 용기_송지영 지음_푸른숲_p124)
순식간에 세상의 공기가 바뀌었다.
내 인생은 네가 떠남과 동시
야마토게임 에 끝났다고, 이 슬픔만큼 어두운 장례식장에 앉아 끝없이 되뇌었다.
나는 낳고 기를 줄만 알았지, 아이를 보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p29
지난 주말, 주문한 책 <너를 보낼 용기>가 도착했다. 표지에는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진
황금성오락실 이 엄마가 쓴 책이다.
서진이의 밝고 쾌활했던 일상은 어느 날부터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춘기의 흔한 변화라 여겼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민해진 시기라 더 그럴 수 있다고 넘겼다. 그러나 딸은 '양극성 장애 2형' 진단을 받았다. 우울과 경조증이 반복되는 질환으로, 1형과 달리 우울 기간이 경조증보다 40배나 길다. 무엇보다 십 대에게 항우울증제를 처방할 경우 자살 충동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경고는 서진이에게 현실로 나타났다.
우울과 불안은 언제나 우리 곁에도 있다
"나도 정신과 상담 한번 받아볼까?"
얼마 전,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에 누워있던 딸의 입에서 낯선 단어가 나왔다. 평온하던 공기가 찬바람을 맞은 듯 순간 식어갔다.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 뛰고,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얘졌다.
"왜?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그냥…. 무기력하고 답답해서. 내 친구 OO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약 먹고 있대."
정신과라는 단어가 딸의 입에서는 동네 편의점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덜컹거린 쪽은 오히려 엄마인 나였다.
책 속의 서진이와 동갑인 딸의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다. 팬데믹의 긴 터널, 입학식도 못 하고 집에서 혼자 보낸 방구석 중학생. 아침엔 자고 있는 아이를 두고 출근했고, 밤에는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쥔 아이에게 퇴근 인사를 했다. 전 국민이 우울한 시기였으니, 사춘기 아이는 더 힘들겠지…. 그렇게 넘겼다.
'사춘기니까 당연한 것이야.''대학 가면 괜찮아지겠지.'
아이의 무기력을 게으름이라 단정하고, '가정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했다.아이가 느끼는 우울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으로 착각했다.
서진이 엄마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리 두기와 침묵을 아이들이 자기 세계를 지키는 통과 의례쯤으로 나는 이해했다. 지나친 간섭보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더 나은 보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오히려 아이의 아픔을 가리는 베일이 되고 말았다. -p82
13년째 1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2024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열 살 미만 아동이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자살 사망 청소년은 221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이중 73%는 겉으로 위기 신호를 보이지 않는 '침묵군'이었다". (EBS 뉴스, 2025. 10. 10)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우울은 사춘기의 감정 기복과 구별하기 어려워 조기 발견이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 나이엔 다 그렇지'라는 말이 위험 신호를 놓치게 한다.
2022년 질병관리청·교육부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명 중 1명이 우울감을 경험했고, 10명 중 1명은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다.
10대의 사망원인 1위가 13년째 '자살'이고, 2019년 이후 십 대 자살률이 34퍼센트나 높아졌는데도,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내 자식만은 아니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가 가슴 깊이 감추고 있는 은밀한 기원이다.
나 역시 이 통계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되리라곤 단 한 순간도 상상하지 못했다. 끝까지 믿고 싶었던 내 아이는 다를 거라는 확신은, 마지막까지 붙든 허약한 방패였다. -p112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살'이라는 단어 앞에서 불편함을 숨기지 못한다. 누군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 이유를 캐기 시작하고 결국 시선은 가족에게 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살은 고인의 의지에 의한 행위였다기 보다는, 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심한 증상'이었을 가능성이 더 노다"(윤소영 교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칼럼)
그럼에도 상실을 품고 살아가는 일은 끝내 완결될 수 없는 슬픔이다.
애도는 눈물로 닫히는 문이 아니라, 날마다 열어야 하는 창문과도 같다.
나는 어제보다 덜 원망하고, 오늘을 조금 더 살아내는 선택을 한다. -p10
밤새 읽은 <널 보낼 용기>는 단순한 '자살 사별자'의 기록이 아니다.
딸을 잃은 엄마가 아픔의 강을 건너, 삶의 회복과 재건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손길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아이들을 향해 뻗어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겉모습만 바라본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아픔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침묵하고, 웃고, 일상을 흘려보내며 "괜찮은 척"을 한다. 그 침묵을 우리는 성숙이라 착각하고, 아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란다. 부모의 '믿음'과 '방임'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경계를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어제 새벽, 수능을 치르는 딸의 도시락을 준비하며,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울컥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일까. 불안과 긴장 속에서 서 있는 딸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를 바라며, 늦었지만 약속한다. 이제 나는 '성적'이라는 수치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먼저 마주 하겠다고.
오는 11월 22일은 '2025년 세계 자살 유족의 날'이다. 1999년부터 매년 추수감사절 전주 토요일마다 전 세계에서 자살로 상처받은 유족들이 치유와 위로를 나누는 날로 기려왔다.
OECD 38개국 중 20년 넘게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우리 아이만은 아닐 것'이라는 바람이 얼마나 취약한 믿음인지,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을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발걸음을 돌려,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다시 걸어가기를. 나는 이 글을 쓰며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