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지난 3일 전세기를 투입해 필리핀으로 도피한 피의자 49명을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 보이스피싱 사기(25명), 강력 범죄(3명) 피의자 등이 포함된 이 작전의 중심엔 현지에 파견된 한국 경찰 ‘코리안 데스크’가 있었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서 한국인 피살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외교부, 2011~2021년). 그 사건 중 과반이 앙헬레스에서 발생했다. 인터폴 적색 소액적금 수배자도 수두룩하다. 이 범죄 도시의 첫 코리안 데스크 이지훈(42) 경감은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에서 배우 손석구(오승훈 경감 역)의 실제 모델이다. 앙헬레스에 파견된 2년의 기록을 담은 책 ‘악은 성실하다’(다산책방)를 펴낸 이 경감을 지난달에 만났다. “앙헬레스에선 총기 사건이 워낙 많이 일어납니다. 길을 걷다 갑자기 뒤에서 총탄 직전학기 성적 을 맞는 청부 살인 사건도 잦아요. 그곳에선 식당에 갈 때도 꼭 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 경감은 한국인 대상 강력 사건이 비일비재한 앙헬레스에 2015년 홀로 파견됐다. “거창한 사명감으로 지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해외 거주를 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합격 후에야 앙헬레스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됐다. 걱정 때문에 잠실 아파트 전세 일주일 만에 체중이 5kg 빠졌다.
지난달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에서 만난 '악은 성실하다'의 저자 이지훈 경감/장경식 기자
활동 여건은 한국보다 훨씬 골치 아팠다. 해외에선 정식 수사권이 없었고, 현지 행정도 느 전세자금대출 절차 렸다. 범죄자를 검거하고 한국에 인도하려면 현지 관료를 구슬리거나 읍소하며 협조를 받아야 했다. 필리핀 경찰은 믿을 수 없었다. 한인들에게 돈을 상납받는 일이 일쑤였기 때문. 현지 경찰이 ‘셋업 범죄’(범죄자인 것처럼 만들어 돈을 뜯는 행위)뿐 아니라 납치와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무법 지대예요. 교민들에게 ‘한국 경찰도 똑같네’ 소리 안 들으려고 아등 부산신용보증 바등 열심히 했습니다” 2016년 10월 앙헬레스의 한 사탕수수 밭에서 총상이 있는 한국인 시신 3구가 발견됐다. 높이 3m가 넘는 빽빽한 사탕수수 아래 있던 시신은 테이프로 손발이 묶인 채 땅에 반쯤 묻혀 있었다. 추적과 허탕을 반복한 지 37일째, 이 경감은 결정적 첩보를 받아 마약상 박왕열(47)의 거처를 급습해 검거했다. “범인 얼굴을 확인하곤 눈물이 난 것 같아요. ‘범인 꼭 잡아주세요’ 부탁한 피해자 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사건은 디즈니+ 드라마 ‘카지노’에서도 다뤘다. ‘카지노’ 대본 자문도 맡았던 이 경감은 “드라마가 현실 고증을 잘했다”며 “첫 장면부터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카지노 업계의 거물 민 회장(김홍파)이 살해당하는 부동산의 분위기, 주변 모습 모두 이 경감이 본 현장과 같았기 때문. 주인공 차무식(최민식)이나 지역을 주름잡는 빅 보스(벰볼 로코)도 실제 모델이 있었다. 이 경감은 차무식의 실제 모델과 소주를 한잔한 적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죽지만 현실에선 잘 지내신다고 압니다. 그를 빅 보스가 소유한 호텔에서 검거한 뒤에는 빅 보스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어요. 해코지를 당할까 봐 작전을 수행한 경찰들이 한동안 숨어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 경감은 앙헬레스를 떠나며 다짐했다. 필리핀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그곳에 재부임할 기회가 생기면 가겠냐고 묻자 그는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코리안 데스크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치 과일 ‘두리안’ 같아요. 먹을 땐 ‘으악 이게 뭐야’ 싶다가도 돌아서면 종종 생각이 납니다. 마침내 범죄자를 검거하는 순간의 묘한 끌림이 있어요. 내가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후회하던 순간들도 떠오릅니다. 기회가 온다면 가서 나쁜 놈들 잡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