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들이 쓰는 [경제뭔데] 코너입니다. 한 주간 일어난 경제 관련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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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도체 주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최악의 부진으로 ‘4만전자’까지 떨어졌던 삼성전자가 올해에만 49.8% 폭등하며 지난 18일 1년 1개월 만에 ‘8만전자’도 넘어섰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8만원을 훌쩍 넘겼던 지난해 6월, 증권가의 ‘10만전자’ 전망을 믿고 ‘한달치 월급’ 정도를 삼성전자에 투자했던 김모씨(28)에게도 ‘80층(8만원) 구조대’가 찾아왔습니다. 매도 주문 생활비대출 을 넣을까 싶다가도 버튼을 누르려니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김씨는 “지금까지 기다린 게 있는데 분위기상 추매(추가매수)를 할까 싶다가도, 하늘이 내려준 마지막 탈출 기회인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증권가는 줄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주가 ‘상향’에 나섰습니다. 시장에선 ‘11만 전자’, ‘48만 닉스’ 전망까지 근로자영세민대출 나옵니다. 과거와 달리 ‘AI발 반도체 사이클’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매번 8만전자를 넘긴 뒤 추락한 삼성전자, 올해는 정말 다를까요? 맥락을 짚어봤습니다.
올해 코스피는 43.4% 오르며 지난 2009년(49.65%) 이후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일부터 16일까지 11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4년 만에 역사상 최고점도 넘어섰죠. 증 씨티은행아파트론 시 정책, 미 금리인하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지난해 코스피 하락의 핵심요인으로 꼽혔던 삼성전자가 최근들어 살아나면서 ‘큰 손’ 외국인투자자가 유입된 영향이 큽니다. 지난해 4분기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만 약 12조원 어치를 팔아치우면서 코스피가 2300선까지 가파르게 추락했습니다. 불범계엄 등도 영향을 미쳤지만, 이 기간 외 고금리 적금 국인 순매도액의 약 90%인 10조6000억원이 삼성전자였을 정도로 삼성전자의 경쟁력 악화가 외국인 이탈의 핵심 요인이었죠. 반면 이달엔 외국인 투자자가 하루에 1조원 넘게 주식을 살정도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코스피도 8% 넘게 올랐습니다. 외국인은 약 20일 동안 총 6조7000억원을 순매수했는데요, 이중 절반 가량인 3조3000억원이 삼성전자였습니다. 삼성전자 주가도 덕분에 이달에만 14.4% 올랐죠. 지난해엔 삼성전자 ‘때문에’ 외국인이 코스피를 떠났다면, 올해는 삼성전자 ‘덕분에’ 코스피로 돌아와 코스피도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이죠. 증권사도 낮춰왔던 눈높이를 다시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 SK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1만원,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48만원으로 높였습니다. NH투자증권(9만4000원), 한국투자증권(9만5000원), 미래에셋증권(9만6000원) 등도 이달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9만원 이상으로 높여 잡았습니다. 지난 2021년 1월 기록한 역대 최고점(9만6800원)을 넘길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죠. 지난해 여름 증권가에서 ‘10만전자’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던 것은 AI산업 때문이었는데요. 이번에도 동일합니다. 다만 지난해는 첨단 메모리반도체 ‘HBM(고대역폭메모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최근엔 D램, 낸드플래시 등 ‘범용 메모리’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서 ‘올해는 다르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발 ‘반도체 사이클’이 온다
PC용 D램인 삼성전자 DDR4 8Gb 제품.
HBM은 용량이 적고 비싸지만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데 특화된 반도체입니다. D램은 전송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용량이 크고 저렴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AI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AI학습에 주로 쓰이는 HBM의 수요가 폭등했는데요. 반면 서버, PC와 스마트폰 등 일반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범용 D램 등은 AI의 수혜를 받지 못해 찬밥 신세였습니다. D램은 경기가 좋아야 잘 팔리는데, 몇년간 경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 HBM 업계 1위 SK하이닉스는 HBM을 바탕으로 영업이익률을 지난해 1분기 23%에서 지난 2분기 41%까지 키우는 등 고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주가도 자연스레 폭등했죠. 반면 삼성전자는 HBM에서 뒤쳐진 삼성전자는 전체 D램 매출 중 HBM 비중이 10%에 그칠 정도로 범용D램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주가도 부진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AI가 발전하면서 범용 메모리도 수혜를 보게됐습니다. 원가절감·용량 확보 차원에서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칩에도 HBM과 더불어 범용D램이 탑재되기 시작했거든요. 요즘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AI를 쓰다보니 기존 서버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량이 많아졌는데요. 그렇다보니 클라우드 업체들도 서버 확충에 나서면서 D램이 필요해졌습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부족해진 것도 삼성전자에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엔 경기가 좋아야만 반도체 사이클이 오고 주가가 올랐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도 AI 덕분에 반도체 사이클이 올 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