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에 있는 고향 집을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은 '모개나무집'이라 불렀다. 모개는 모과를 부르는 강원도 사투리인데 뒤꼍에 얼추 15m는 넘었을 큰 키의 아름드리 모과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익은 모과가 바람에 종종 떨어져 사랑채 슬레이트 지붕을 깨기도 했다. 그처럼 모과는 익은 후에도 물러지지 않고 돌처럼 단단하다. 모과는 과육이 나무처럼 텍셀네트컴 주식 딱딱하다고 하여 목과(木果·왜어유해(1782)와 물명고(1827) 등)나 타원형으로 크고 노랗게 익는 모양이 참외를 닮았다고 하여 목과(木瓜·향약집성방(1433)과 훈몽자회(1527) 등)로 기록되어 있는데 발음 과정에서 자음이 탈락하여 모과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모과가 지붕을 깨는 일이 생겨도 아버지께서 그 모과나무를 벨 작정을 모바일릴게임사이트 하거나 가지치기조차 함부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집을 부르던 택호(宅號)이기도 해서였겠지만, 그 다양한 용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숨은 듯 피는 연분홍의 꽃,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꽃잎, 멋진 문양을 남기며 벗겨지는 수피, 늦가을까지 정취를 이어주는 상큼한 향기의 노란 과일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정원수였다. 잘 익은 모과를 모아둔 광주리에무림페이퍼 주식 서 진한 향이 날 때쯤 어머니는 모과를 나박썰기해 항아리에 넣고 꿀과 소주로 재워 곳간 구석에 두어 삭히셨다. 감기에 잠 못 들던 밤에 떠주시던 몇 숟갈의 그 새콤달콤한 정성에 기분 좋게 잠들기도 했고, 몰래 국자로 떠서 훔쳐 마시고 빙글거리는 별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약이기도 했고 술이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전북혁신도시 근린공원에야마토3 는 유독 모과나무가 많다. 심은 지 10년이 넘어 제법 교목의 자태를 갖추고 있다. 요즘 출근길 대방 상가 100m 남짓 갓길에서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많이 달려 있는 모과를 볼 수 있다. 늦가을까지 무더웠던 금년에도 저렇게 많이 열린 것을 보면 모과나무는 더위에 매우 강한 듯하다. 여러 자료에 충청 이남에서 잘 자란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더 북쪽 서울과 신규 릴게임 고향 양양에서도 잘 자란다. 국내 유일 천연기념물 모과나무가 청주에 있고, 모과나무로 유명한 사유원이 대구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느 해 태풍으로 그 모과나무의 한쪽 가지가 부러졌고, 그냥 두면 집 쪽으로 쓰러질 수 있어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고향 집엔 그 모과나무가 없다. 그래도 어릴 적 추억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과를 볼 때마다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